세상엔 별놈이 다 있어 #2

by 이룸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의 말에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뭘로 드시겠어요?”


정애라고 불린 종업원이 피곤한 기색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여기 잠깐 앉아봐.”


그가 손으로 소파를 툭툭 쳤다. 종업원이 그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마담도 잠깐 와보지.”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던 마담이 가까이 왔다.


“거기 앉아봐.” 그가 나의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이 마담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거든.”


평소엔 ‘정수’라는 이름이나 ‘황 선생’이라고 지칭하던 그가 나를 ‘이놈’이라고 했다. 좋게 말하면 풍만하고 안 좋게 말하면 똥똥한 체형의 마담이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그의 말에 따라 그와 연배가 비슷한 마담이 내 파트너가 되었고, 나와 연배가 비슷하고 날씬한 몸매의 종업원은 그의 차지가 되었다.


“오늘 나 만나게 된 걸 큰 복으로 알면 돼. 내가 오늘 돈을 물 쓰듯 쓸 테니까 손님 더 와도 받지 말고…… 우선 문부터 잠그고 와봐.”


“어머, 멋쟁이신가 보다.”


마담이 반색을 하며 종종걸음으로 출입문을 잠그고 왔다. 종업원은 애써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술도 안주도 이 집에서 최고로 비싼 걸로 가져오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팁도 두둑이 줄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내숭 떨기 없기야.”


“어머, 그럼요.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마담이 호들갑스레 애교를 부렸다. 종업원도 마담의 눈치를 보며 흥겨워하는 웃음을 흘렸다.


“우선 술부터 내와 봐.”


그의 말에 마담과 종업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셨어요?”


평소답지 않은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며 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혼하기로 결정했다.”


한숨을 푹 내쉬며 그가 말했다. 나는 입을 헤 벌리며 놀라움을 표했다. 공무원인 아내, 대학원에 다니는 딸,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아무 문제없이 잘 사는 줄 알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로 이혼을……?”


그러자 그가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너 같은 놈한테 그런 말을…… 말을 말자.”


모멸감이 훅 끼쳐왔다. 나는 그에게 어떤 의미란 말인가. 3년여의 시간 동안 만나오면서 한 번도 품어본 적 없었던 근본적인 물음이 고개를 쳐들었다. 가끔씩 그가 불러내면 함께 술을 마시며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맞장구를 쳐주는 역할에 불과하단 말인가. 그동안은 그저 분에 넘치는 상대와 만나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의 필요에 따라서만 잠깐씩 쓰이는 소모품 같은 대상이었단 말인가…….


“대령했사옵니다.”


마담의 말이 생각의 꼬리를 싹둑 잘라냈다. 마담이 양주와 음료수와 컵들을, 종업원이 과일안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있었다.



“자, 오늘은 거추장스러운 것들 모두 벗어던져 버리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놀아보자.”


그가 웃옷을 벗으며 말했다. 마담과 종업원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자,


“아, 뭐해?”


그가 메리야스를 벗으며 덧붙였다.


“돈을 먼저 주셔야…….”


마담이 미심쩍어하는 얼굴빛을 내보였다. 비싼 술과 안주를 시켜놓고선 몰래 도망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배어 있는 말투였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로 들렸다.


“나갈 때 한꺼번에 계산하면 되잖아. 나, 못 믿어?”


“못 믿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돈을 치러주셔야 저희도 신바람이 나서 더 신나게 놀 수 있잖아요.”


마담이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몸을 비비 꼬며 말했다.


“좋아, 좋아.” 그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어 치켜들었다. “이런 걸로 옥신각신하기 귀찮으니까, 지금까지 나온 거부터 우선 계산하고 와.” 그러곤 카드를 마담의 앞에 내려놓았다.


“옷 벗는 건 얼마로 계산하옵니까?”


밝아진 표정으로 마담이 물었다.


“10만 원씩 주면 되겠어?”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3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