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처럼 되고 싶다면 일반적인 삶의 방식을 지워야 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카프카도 일반적인 삶을 살았는걸,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나는 참았다. 그녀와 논쟁 같은 걸 하고 싶지는 않았다. 되도록 그녀의 생각에 보조를 맞춰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묘한 매력을 지닌 여자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어딘가 싶었다.
“좋아요.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가죠. 외계인들은 그럼 UFO를 타고 지구에 오는 건가요?”
내가 말을 마치자 그녀가 픽, 실소를 했다.
“그건 지구인의 사고방식이에요. UFO 같은 걸 타고 어느 세월에 몇 백만 광년을 이동할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그녀가 동의를 구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저 눈만 껌벅여 보였다. 그녀가 또 술을 쪼옥 빨았다. 나는 술잔을 비운 다음, 그녀와 나의 잔에 술을 채웠다. 목 부분까지 내려온 뒷머리에, 눈썹 바로 위에 일직선으로 가지런하게 자른 여자의 앞머리를 보고 있자니 왠지 SF 영화에서 본 안드로이드가 연상되었다. <블레이드 러너>였으리라, 아마도.
“그럼 어떻게……?”
나는 순진한 학생이 되어 질문했다.
“자, 보세요. 개미들의 세계가 있어요. 지나가던 인간이 무심코 나뭇가지로 장난을 친다고 해봐요. 개미들에게는 뭐가 되죠?”
그녀는 지지부진한 학생에게 최대한 쉽게 설명해 주어야겠다고 느낀 선생님처럼 비유를 동원했다. 그러곤, 이해가 가느냐는 듯 나를 응시했다.
“난리가 났겠죠.”
나는 이번에는 말 잘 듣는 학생이 되어 대답했다.
“그런 거예요. 개미가 인간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거나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찬가지예요. 인간은 결코 외계인의 삶이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요.”
나는 자꾸만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파장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정리 되지 않는 생각들만 머릿속을 붕붕 떠다녔다. 이런 얘기를 진지하게 주고받는 것 자체가 우습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흥미롭기도 하였다.
“유리 씨는 외계인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나는 반격을 감행했다. 그녀의 파장 안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반격이었다.
“아마, 그럴 거예요.”
아마, 라니…….
“그런데 어떻게 외계인에 대해서 안다고 하죠? 인간은 외계인의 삶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 모순되는 말이라는 것, 인정하시죠?”
강한 신념을 지닌 존재를 굴복시키는 데서 오는 일종의 통쾌함을 맛보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그녀를 응시하였다. 어이쿠,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같은 응답을 기다리며. 아, 하고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죽기 전까지는 그렇죠.”
“에이, 설마 죽어봤다는 거예요?”
그녀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었다가 살아난 적이 있어요.”
오, 이런! 절로 탄성이 새어나왔다.
“정말요? 어떻게…….”
“그 얘기는 지금 하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녀는 심드렁한 얼굴로 팝콘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하던 얘기로 돌아갔다.
“그럼, 외계인이 지구에 오는 목적은 뭐죠?”
“아까 다 얘기했잖아요?”
“언제요?”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 유배당해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에는 우리보다 훨씬 진화된 생명체가 사는 행성도 있고, 우리보다 진화가 덜 된 생명체가 사는 행성도 있어요. 당연히 지구에 오는 외계인은 진화된 행성에서 오는 거죠. 지구로 유배당했다는 건 가혹한 형벌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들의 삶이 고달픈 거예요.”
해글해글, 나는 웃음 지었다.
“왜 웃어요?”
푸하하하…….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시종 진지하게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고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술을 빨며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주시하였다. 계속해서 피식피식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잠재우기 위해 나는 한치를 입에 넣은 다음 우걱우걱 씹어댔다. 그녀는 땅콩을 입으로 가져가 천천히 오물거렸다.
한치를 씹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우선 드는 생각은, 이 여자는 제정신이 아니구나, 였다. 살면서 이상한 여자라거나 미친 것 같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으리라. 그 다음으로 든 생각은, 그러면 왜 이 여자는 제정신이 아니게 되었을까, 였다. 그러나 물론 그런 물음을 입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한편으로 나는 여자에게 관심이 갔다. 아니, 강하게 끌렸다. 이 여자를 놓치면 안 된다, 이 여자가 카프카로의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그동안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두드리고 또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길을 이 여자가 인도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비상했다. 어쩌면 카프카의 길은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파닥거렸다. 카프카의 독특한 글에 매료되었듯이 그녀의 특이한 말과 행동에 나는 여지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