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요?”
“카프카처럼 되려면.”
“가장 쉬운 건, 포기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으로는,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죠?”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죽어버리는 거라니…… 논리 한 번 과격하군.
“그럼 남은 방법은 딱 한 가지예요.”
“그게 뭐죠?”
“카프카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응? 뭐지? 멀고 먼 길을 돌아 지극히 평범한 사고방식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동안 노력은 해 봤나요?”
“어느 정도는…….”
나는 자신 없이 얼버무렸다.
“어느 정도 갖고는 안 돼요. 철저히 카프카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해요. 자아의 완고한 벽을 허물지 않고서 막연히 되고자 하는 건 ‘동경’에 불과해요.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세상의 온갖 권위에 대한 투쟁이자 반란이었어요. 글쓰기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죠. 외계인들의 공통점은 그거예요. 인간보다 에너지 몰입도가 훨씬 강력하다는 것. 우리보다 훨씬 진화된 행성에서 왔으니 당연한 거죠.”
이제 대화가 정상적인 궤도에 진입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빨대를 빨았고, 나는 계속해서 맥주잔을 기울였다. 그녀의 말을 곱씹어 보건대, 맞는 말이었다. 나는 막연히 동경만 했을 뿐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하지 않았다. 조금 써 보다가 내팽개치기 일쑤였고, 술자리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나갔으며, 심심할 때마다 컴퓨터를 켜고 야구나 축구나 격투기에 눈을 빠트렸다. 에너지를 온통 글쓰기에 쏟아 부은 생활하고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꿈만 거창했을 뿐 실행은 미미했다.
어수선했던 머리가 이제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무언가를 크게 이루려면 외계인 소리를 들을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어설픈 노력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 그런 얘기를 그녀는 기이한 방식으로 펼쳤을 따름이었다. 힘들게 퍼즐을 맞춘 느낌이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녀의 말들이 나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잠시 어딘가로 유배가 있던 취기가 돌아와 다시금 몸속을 배회했다.
“혹시…… 카프카를 전공한 건가요?”
이제 본격적인 얘기를 주고받아야겠구나, 생각하며 나는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귀엽게 눈을 흘겼다.
“에이, 이 정도야 현대인의 상식이잖아요.”
그런가? 아닌 것 같은데…….
“숲에 가지 않을래요?”
갑자기 생기발랄한 얼굴이 되어 그녀가 말을 툭 던졌다. 응? 이건 또 무슨 얘기지? 취기가 다시 몸에서 휘리릭 빠져나갔다. 휴대전화를 꺼내어 시간을 보았다. 열한 시 삼십 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 말인가요?”
“그게 어때서요?”
그게 어때서요, 라니…… 다시 정상 궤도를 벗어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녀의 얼굴 표정은 태연하기만 했다. 아무리 빨대로 술을 빨아대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혹시 이 여자도 외계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싫으면 관두세요. 저 혼자 가면 되죠 뭐.”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가자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음주운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이미 내친김이었다. 그녀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도시 외곽에 자리한, 이름도 모르고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산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익숙한 곳인 듯했다.
그녀가 손짓하는 방향으로 꺾어 들어가니 시멘트길이 나왔고, 조금 더 들어가니 주차 공간으로 쓰일 법한 공터가 나타났다. 이곳에 차를 멈추라는 표시로 그녀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헤드라이트가 없으면 너무 어두울 것 같아 시동을 끄지 않고 있었더니, 그녀가 다시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시동을 끄라는 표시를 했다. 내가 뭐라고 입을 열려고 하자 그녀가 왼손 집게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쉬, 했다.
내가 시동을 끄자 그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이구야, 생각하며 나도 밖으로 나왔다. 가로등도 없었다. 달빛과 별빛만이 빛의 전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손전등이라도 사오는 거였는데 싶었다.
그녀가 앞으로 걸어갔고, 나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길도 보이지 않았고, 그녀의 형체가 보일락 말락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형체도 분간할 수 없었다. 나무들이 달빛과 별빛마저 삼켜버렸다. 그야말로 깜깜했다. 발소리와 옷깃 소치는 소리, 거기에 풀벌레 소리가 합세하여 어둠속에 난해한 음률을 흩뿌리고 있었다.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곳에 놓여 있자니 자연스레 청각이 예민해졌다. 숲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올 때마다, 설마 이곳에서 외계인을 접선하는 건 아니겠지? 멧돼지나 반달곰이 불쑥 나타나 돌진하는 건 아니겠지? 혹시 그녀는 귀신이 아닐까? 별의별 생각들이 마음을 오그라들게 했다.
도대체 주변에 뭐가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옆을 보아도 위를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을 능숙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존재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그저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갈 도리밖에 없었다. 그녀의 모습보다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뒤따르고 있다고 말하는 게 적합한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