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ddest thing 6

by 이룸

밖으로 나오자 더할 수 없이 시원한 초가을의 밤기운이 느껴졌다.

왕규의 파트너는 왕규의 몸에 달라붙어 미소 짓고 있었다. 나의 파트너는 서먹한 채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

“여기서 헤어집시다. 이제 왕비와 함께 침소에 들 시간이오!”

여전히 헤벌쭉 웃어대며 왕규가 말하자, 그의 파트너가 까륵까륵 숨넘어갈 듯한 웃음을 흩날렸다.

“네, 잘 들어가세요.”

나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왕규와 그의 파트너가 멀어져갔다. 왕규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노래를 불렀고, 그의 파트너는 깔깔깔 웃어대며 아양을 떨었다.

“우리, 숲에 갑시다.”

나는 파트너를 향해 말했다.

“뭐라고요?”

여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숲에.”

나는 반복했다.

“숲? 지금 이 시간에?”

여자가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팔짱을 끼며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인생 최고의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정말이에요. 무릉도원이나 에덴동산을 맛보는 거라고요.”

말을 할수록 숲이 간절히 그리워졌고, 나는 여자를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

“소나무숲속에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어요. 별빛과 달빛을 보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을 수 있어요.”

여자가 헛웃음을 짓더니 사정없이 고개를 도리질하며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 신경질 나. 왜 난 꼭 이런 남자들만 꼬이는 건지 몰라.”

여자는 그러고 나서 나를 흘겨보았다.

“이봐요,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나 그쪽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데, 그냥 화끈하게 모텔에 갑시다. 어차피 서로 외로워서 만난 거잖아, 안 그래요?”

“숲에 가면 우주의 기운과 호흡할 수 있어요. 지금이 딱 적기예요. 추워지면 가기 힘들잖아요. 처음이라 망설여지겠지만, 아무렇지 않아요. 금방 익숙해져요. 내 말만 믿어요. 모텔에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그냥 눈 딱 감고 한 번만 가보면 알게 돼요.”

나는 이제 애달아하며 사정했다.

“아이, 썅!”

여자가 거의 울듯이 인상을 구기며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그렇게 맘에 안 들어? 그럼 그냥 싫다고 하지, 왜 정신병자 행세를 하고 그래, 이 미친놈아!”

여자는 말을 내뱉고 나서 큰길가로 가서 멈춰 서 있는 택시에 올라타고 사라졌다.


*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물류창고로 갔다.

주차된 차에 오른 다음 숲을 향해 차를 몰았다.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 같은 건 아예 고개를 디밀지도 않았다. 숲이 간절히 나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만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혼자라도 가서 우주의 기운에 흠뻑 젖어들고 싶었다. 아니다, 어쩌면 유리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공터에 주차를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오솔길에 들어선 뒤 더듬더듬 걷다 보니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느 곳으로 들어가야 플라타너스 나무가 나타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생각건대 나는 항상 유리의 뒤만 따라가지 않았던가.

어림짐작으로 길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한참을 걸어도 빈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러다간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시 뒤돌아서 걸었다. 그러나 분명 이 정도쯤에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한 지점에 왔건만, 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 길을 걷다가 왼쪽으로 꺾어 들었으니 오른쪽으로 가면 길이 나와야 했는데, 어디가 길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눈을 치뜨고 어둠 속을 응시하노라니 눈알이 빠질 것만 같았고, 그럴수록 어둠이 한층 더 짙어지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헤매었다.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나무를 가늠하다가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했고, 가시넝쿨 같은 것에 손이 걸려 긁히기도 했다. 위를 쳐다보았자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달빛과 별빛을 가려 캄캄하기만 했다.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손전등을 미리 사두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리미리 준비해 두지 않고 매번 충동적으로 행동하곤 후회하는 꼴이 우습게 여겨졌다.

다시 왼쪽으로 몸을 틀고, 아래쪽이라 생각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플라타너스를 찾는 건 포기하고 자동차가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아, 그렇지, 생각하며 휴대전화를 꺼내어 빠른설정창을 열고 손전등 그림을 찾아 눌렀다. 그러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아래쪽으로 기울였을 땐 바닥만 환했고, 정면으로 방향을 바꾸니 가까운 곳의 윤곽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아하, 그렇지, 다시금 생각하며 휴대전화의 ‘지도 검색’ 버튼을 눌러 현 위치를 탐색해 보았다. 그러나 오솔길은커녕 시멘트길도 화면에 뜨지 않았다. 그저 산과 도로만 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