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ddest thing 7

by 이룸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막막함만이 온몸을 휩싸고 돌았다. 손으로 바닥을 더듬어 본 다음 자리에 누웠다. 지금 상황이야말로 나의 현재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마음마저 까맣게 물들였다. 카프카처럼 되고자 했으나, 그렇기는커녕 카프카적 상황에 빠져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하는…….

그냥 이대로 잠이 들었으면 싶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숲에서 간헐적으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들려왔고, 잔뜩 겁이 났다. 어둠 속에 잠겨 있자니 헛된 상상만 한껏 부풀어 올랐다. 멧돼지나 곰이 나타나 돌진할지도 모른다, 흉악한 살인범이 숨어 있다가 불쑥 다가설지도 모른다, 한 맺힌 귀신이 떠돌다가 나를 발견하고 내 혼을 빼갈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유리는 참으로 대단한 여자가 아닐 수 없었다. 여자의 몸으로 이런 곳에서 옷을 홀라당 벗고 잠을 잤다니…….

결국 다시 일어나 손으로 나무를 더듬거리며 아래쪽이라 생각되는 곳으로 휘청휘청 걸음을 옮겼다. 한참만에야 도랑이 나타났다. 별과 달이 보였고, 주변도 희미하게나마 분간이 되었다. 그제야 시멘트길 옆으로 도랑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저 멀리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도랑물이 깊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신발을 물에 빠트린 채 조심조심 한참을 걷다보니 왼편에 내 자동차의 형체가 보였고, 나는 도랑 기슭을 기어 올라갔다.

유리가 간절히 그리웠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Skylark의 ‘Wildflower’를 검색하곤, 들었다. 듣고 또 들었다. 그것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아무 것도 없었다. 환한 낮에 숲에 다시 가볼까 싶은 마음도 일렁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무심코 두세 번 들었다가 까마득히 잊혔던 노래가 이다지도 의미 깊게 가슴에 파고들다니…… 그것도 참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가사를 검색해 보았다.


She’s faced the hardest times you could imagine.

And many times her eyes fought back the tears.

And when her youthful world was about to fall in

Each time her slender shoulders

Bore the weight of all her fears.

And a sorrow no one hears

Still rings in midnight silence in her eyes.

Let her cry, for she is a lady.

Let her dream, for she is a child.

Let the rain fall down upon her,

She’s a free and gentle flower growing wild.

그녀는 당신이 상상하기 힘든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

그리고 수많은 눈물을 삼켜야 했어.

꿈꾸는 세상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그녀의 가냘픈 어깨는 두려움의 무게를 버텨내야 했어.

아무도 듣지 못하는 슬픔이 그녀에게는 여전히

한밤의 적막 속에서 들려오네.

그녀를 울게 내버려 둬, 그녀는 숙녀니까.

그녀를 꿈꾸게 내버려 둬, 그녀는 어린아이니까.

그녀가 비를 맞도록 내버려 둬,

그녀는 거칠게 자라나는 자유롭고 부드러운 꽃이야.

이 짧은 구절을 종이에 옮겨 적는 데 두 시간 가량이 걸렸다. 그래서 2절은 포기했다.

한 줄을 읽고 나면 글자들이 춤을 추며 흩어져 버렸다. 눈을 감고 있다가 한참을 지나서 들여다보아야 다시 글자들이 보였다. 그래서 한 줄 읽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외우기 위해 노력했다. 난독증이 오래 가면 암기력은 좋아지겠군, 싶었다.

꼭 그녀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노랫말을 쓴 것 같았다.

내가 어떤 노력을 했더라도 그녀를 붙잡지는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노력은 그녀의 삶을 방해하는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자기 계발서나 성공학의 저자들은 노력하면 뭐든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지만,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 괜한 헛심을 들이기보다는, 아니다 싶으면 일찍 포기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노력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는 마음 자세가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 닿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이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리 그런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려 애쓰며 위안을 삼으려 해도 막막한 마음을 가누기엔 역부족이었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도 나도. 길을 잘못 들어선 사람끼리 우연히 마주쳤고, 같은 처지에 동병상련을 느꼈는지도, 그렇지만 결국 함께 머무는 시간이 길게 허용될 수 없다는 게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사람들이 고통 받는 건 자신에게 적합한 길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길을 가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에게 적합한 길은 무엇일까……. 그러나 여전히 나는 암흑의 숲에 덩그마니 놓여 있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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