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ddest thing 8

by 이룸

월요일, 점심을 먹고 났을 무렵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직도야?”

“네,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뭘,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조금의 진척도 없어?”

“잠시 보는 건 괜찮은데, 오래 보고 있으면 증상이 나타납니다. 글자가 깨지고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허허, 그것 참…… 대책을 강구해야겠구만. 언제까지나 내가 자네 대신 일할 수는 없지 않나.”

나는 대답 없이 듣고만 있었다.

“왕규는 여전한가?”

“네?”

“여전히 술 마시면 제정신이 아니게 되는 거냐고?”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괜한 말실수를 하게 될까봐 나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왕족의 후손이니까 잘 모셔야 해. 시대를 잘못 태어난 사람이지.”

으허허허, 사장의 너털웃음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월요일에도 첫날과 똑같은 하루가 이어졌다.

물류운송차가 책을 싣고 오면 왕규와 나는 창고 안으로 책을 날랐다. 그러면 경리를 맡은 아가씨가 책의 정보를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했고, 왕규와 나는 책을 종류별로 분류하여 서가로 날랐다. 주문이 들어온 책을 왕규와 내가 찾아서 옮기면, 경리 아가씨가 컴퓨터에 재고 수량을 수정했다. 그러면 왕규와 나는 서점별로 책을 상자에 담고 택배 송장을 붙였다.

경리 아가씨는 이십대 중반의 나이인지라, 아저씨들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업무 이외의 시간에는 틈날 때마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라는 듯이. 점심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함께 밥을 먹어야 했다. 그러나 밥을 먹으면서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왕규와 나는 틈 날 때마다 창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셨다.

“나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말이오.”

왕규가 턱짓으로 경리 아가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시간처럼 무서운 게 없는 법이오. 어느새 오십이 넘어 버렸다니……. 저 나이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이 나이가 되리라고는. 그러나 말이오, 저 나이로 다시 돌아갈래? 라고 한다면 그건 싫소. 저 나이 땐 인생이 뭔지를 몰랐잖소. 그때 쓴 시들을 보면 낯이 화끈거리오.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지금에 와서야 제대로 된 시를 쓰는 것 같소. 시는 젊을 때 쓰는 것이다, 라는 말이 횡행하고 있는데, 그게 다 문단 권력자들이 퍼뜨린 소리요. 젊은 사람들일수록 권위에 약해서 말을 잘 듣는 법이잖소. 자신들의 뜻대로 마음껏 쥐락펴락하기 위해 그런 말 같잖은 소리를 주워섬기는 거요.”

“선생님 시를 볼 수 있을까요?”

온통 피해의식과 합리화로 중무장한 그의 궤변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아 내가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그가 끄억끄억 웃음을 날렸다.

“그거야 뭐 어렵겠소.”

그런 다음 휴대전화를 꺼내어 자신의 블로그를 펼친 다음 나에게 건네주었다.

제목은 ‘처방’이었고, 내용은, ‘사는 게 재미없다고들 한다. 관 속에 들어가 삼일간만 누워 있어 보라.’였다. 그게 전부였다. 시라기보다는 아포리즘에 가까웠다. 왠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느낌이 드는 글귀였다. 그러나 그런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두 번째 시를 보려고 했더니 글자가 흔들거리다가 흩어져 버렸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또 그 증상이오?”

왕규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소, 내 시가?”

“짧아서 좋군요.”

“그렇소. 짧고 쉬워야 하오. 요즘 사람들이 왜 시를 안 보는지 아오? 너무 어렵기 때문이오. 그게 다 문단 권력자들이 만들어 놓은 행태요. 그들이 왜 그런 쪽으로 시를 몰아가는지 아오? 그래야 자신들의 권위가 서기 때문이오. 일종의 특권의식이지.”

그의 집요한 문단 권력자 비판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비웃음으로 느껴질까 봐서 고개를 돌리고 소리를 죽였다. 짧고 쉽다고 해서 과연 사람들이 시를 많이 볼까요? 라고 반문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시를 쓰는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나는 다시 휴대전화로 시선을 옮겼다. 다음 시의 제목은 ‘욕망’이었고, 내용은, ‘당신이 찾는 곳에 나는 없을 거요. 내가 찾는 곳에 당신은 있어야 하오.’였다. 나는 휴대전화를 왕규에게 넘겨준 다음 눈을 감고 손바닥을 눈두덩에 갖다 댔다.

왕규가 휴대전화를 들고서 다음 시를 읽었다.

“제목은 ‘역설의 시대’요. 너무 많은 것들이 보이고 들릴수록 우리네 감각은 마비되어 근시(近視)가 되고 근청(近聽)이 되네.”

아, 하고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제 얘기네요.”

왕규가 지난 금요일에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압축된 언어로 들으니 묘하게 마음이 울렸다.

“우리 모두의 얘기요. 현대인은 몸소 경험하는 것에 비해 어디서 주워듣거나 겉핥기로 보고 배우는 것이 너무 많소. 그러다 보니 뭣도 모르면서 다 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일쑤요. 그러다가 큰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쓰라림을 맛보면서 실상과 대면하게 되는 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내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편집 일을 하면서 너무 많은, 체화되지 않은 정보가 내 안에 들어와 과부하 상태가 된 것은 아닐까. 난독증은 어쩌면, 계속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인지도 몰랐다. 또한 그것은 꿈의 증발과도 맥이 닿았다. 카프카처럼 되고 싶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실행은 갈수록 등한시하고 오로지 눈앞의 먹고살기에만 급급해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나타난 증상인지도 모른다. 유리의 말마따나, 그것은 꿈이라기보다는 막연한 동경이라는 이름에 더 부합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다시 물류운송차가 왔고, 왕규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