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ddest thing 5

by 이룸

종업원이 여자 둘을 데리고 나타났다.

둘 다 사십대의 나이로 보였고,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왕규는 후궁을 맞이한 왕이라도 된 기분인 듯 양손을 들어 올리며 만세를 불렀다. 그러곤 고개를 뒤로 젖히며 입이 찢어져라 웃음을 뿜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종업원이 키가 작고 마른 체형의 여자를 왕규의 옆에 앉게 했다. 그러자 큰 키에 통통한 체형의 여자가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이런 게 부킹이라는 거구나, 싶었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왕규가 헤벌쭉 웃는 얼굴로 옆의 여자에게 술을 따라주었고,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옆의 여자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왕규가 먼저 잔을 들어 올렸고, 넷이서 잔을 부딪쳤다.

나는 또 벌컥벌컥 술을 비웠다. 옆의 여자는 한 모금 마신 다음 내 잔에 술을 따라주고는 바나나 조각을 집어먹었다.

여자가 내 귀에 대고, “이름이 뭐예요?” 하고 외쳤다. 나는 여자의 귀에 대고 내 이름을 소리친 다음, “그쪽은요?” 하고 소리 질렀다. 짙은 향수 냄새에 숨이 막힐 뻔했다.

여자가 내 귀에 대고 자신의 이름을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김상미라고 했는지 김향미라고 했는지 김송미라고 했는지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하긴, 여자도 내 이름을 정확히 못 알아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어차피 잠시 만나서 즐기다가 헤어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만남에서 말이다.

어떤 일 하느냐고 여자가 물었고, 나는 출판사에 다닌다고 대답했다. 같은 질문을 여자에게 하자, 뷰티샵이라는 응답이 돌아왔다.

결혼은? 하고 여자가 물었고, 안 했다고 대답하자, 정말?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그게 왜 놀랄 일이냐고 말하려다 번거로운 대화가 이어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같은 걸 물어보자, 여자가 뭐라고 했는데 잘 들리지 않아서 다시 귀를 갖다 댔더니, “돌, 씽!”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귀가 먹먹했다. 고막이 터져버린 건 아니겠지? 걱정이 들 지경이었다.

시종 헤벌쭉 웃으며 옆의 여자와 귓속말을 주고받던 왕규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하며 뭐라고 말했다. ‘춤추러 나갑시다!’ 정도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넷이서 춤추는 공간으로 나가 몸을 흔들어댔다. 음악의 리듬과는 상관없이 다들 제멋에 겨워 춤을 추었다. 왠지 부조리극의 한 장면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이 출렁거렸다.

그렇게 십여 분이 지났을 무렵, 뱅글뱅글 휘황찬란하게 돌아가던 조명이 천천히 돌아가는 낮은 광도의 조명으로 바뀌었다. 그와 함께 DJ를 보던 남자가 사라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옷을 입은 여가수가 나타났으며, 느린 선율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블루스 타임’인 모양이었다.

왕규와 그의 파트너는 망설일 여지없이 착 달라붙었지만, 나는 어색함을 느끼며 자리로 향했다. 나의 파트너도 어쩔 수 없이 자리로 돌아왔다.

“총각이 맞긴 맞나 보네, 블루스를 꺼리는 걸 보니?”

여자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 다음 해죽해죽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귀에 대고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여자가 맥주를 따라준 다음 사과 조각을 포크에 찍어 나에게 건넸다.

“근데 왜 아직까지 총각이야?”

여자가 사과를 씹으며 물었다.

“어쩌다 보니…….”

내 대답에 여자가 입을 비죽 내밀었다.

“그러는 그쪽은 왜 돌싱이 됐어요?”

내가 묻자, 어쩌다 보니, 라고 말하고 나서 멋쩍게 히히거리더니, 남자 잘못 만난 죄지 뭐, 했다.

맥주잔을 들어 올려 또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는데 첫 번째 노래가 끝나고 새로운 곡이 시작되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곡이다 싶었는데, Skylark의 ‘Wildflower’였다. 오, 이럴 수가! 나는 맥주잔을 내려놓고 여가수에게 집중했다. 순간, 여가수의 옷에 붙어 반짝반짝 빛나던 것들이 별이 되어 떠올랐다. 그리고 숲이 펼쳐졌다. 여가수는 이제 숲에서 알몸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여가수는 혹시 유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요동쳤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가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비틀비틀 출렁대는 나무들을 피해 걸으며 거의 다 왔을 무렵 암벽이 막아섰다. 암벽을 오르려고 한참을 허우적거리고 있을 무렵, 누군가 나를 붙들었다. 종업원과 왕규였다. 사장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고 종업원이 말했고, 왕규는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 캉캉캉 웃어댔다. ‘Wildflower’가 끝을 맺고 새로운 노래의 전주가 시작되고 있었으며, 여가수는 무대 위에서 박자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힐끔힐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리가 아니었다.

“가수한테 넋 나가지 말고, 파트너에게 집중해야지.”

왕규가 내 귀에 대고 말한 다음 크악크악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자신의 파트너와 착 달라붙었다.

내가 자리로 돌아오자 내 파트너는 팔짱을 낀 채 뾰로통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저 가수가 그렇게 맘에 들어요?” 하고 말을 쏘았다.

“아니, 잠시 착각을 했어요, 아는 사람인 줄 알고.”

그렇게 말하자, 여자가 팔짱을 풀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가까이 다가앉았다.

“정말? 어떻게 아는 사이?”

“어, 그냥…… 전에 알던 사람이 가수가 된 건 아닌가 싶어서…….”

그때 왕규와 그의 파트너가 돌아왔다. 왕규가 맥주병을 들어 빈 잔을 모두 채웠다.

“자, 마시고 나가자고!”

왕규가 잔을 들어 올렸고, 넷이서 잔을 부딪쳤다.

내가 계산을 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왕규가 카드를 꺼내들며 나를 제지했다.

“난 고려 왕족의 후손이야. 잊지 말라고. 이까짓 건 나한테 아무것도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