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ddest thing 16

by 이룸

순간, 왕규가 사장에게로 냅다 달려들더니 멱살을 틀어쥐었다. 사장을 올려다보며,

“야, 이 씨발 새끼야, 한 번이면 좆댔지(‘족했지’ 라는 뜻의 말이 ‘좆댔지’로 발음된 것 같다) 나이 들어서까지 이러는 이유가 뭐야? 엉? 소라가 니 봉이야?”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사장이 어이없어 하며 피식 웃어 보였다.

“어, 이 새끼, 너, 지금, 비웃냐?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 나를 비웃어? 너 이 새끼, 내가 누군 줄…….”

그러나 뒷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사장이 멱살을 쥐고 있는 왕규의 손을 떼어 내는가 싶더니 왕규를 가볍게 밀쳤고, 왕규는 바닥으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사장은 옷을 툭툭 털고 매만지더니 여자를 향해,

“빨리 내보내!” 했다.

여자가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왕규를 바라보았다. 나는 왕규의 몸을 붙들며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일어서던 왕규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러곤 고개를 좌우로 연거푸 흔들어 대더니, 푸우우,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사장과 그의 친구들은 다시 자리에 가서 앉고 있었다. “완전히 맛이 갔구만.”, “또라이 새끼네.” 같은 말들이 들려왔다. 나는 왕규를 부축해 일으켰고, 그의 몸을 붙들고 원래의 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앉히자, 왕규는 입을 벌린 채 멍한 눈길로 앞을 바라보았다. 초점 잃은 눈동자가 돋보기안경 너머로 희번덕거렸다. 그러곤, “여기가 어디지?” 했다.

“여기 술 마시러 왔잖아요. 저는 알아보시겠어요?”

“고 선생이 아니오.”

그러면서 눈을 감고 머리를 연거푸 흔든 다음 다시 눈을 떴다. 여자가 다가와 팔짱을 낀 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왕규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너, 왜 그렇게 망가졌니?”

목소리를 듣고서 왕규가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화들짝 놀라며,

“어, 소라야! 여기서 뭐해?” 했다.

여자가 한숨을 내쉬며 어처구니없어하다가 오른손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빨리 계산하고 나가.” 했다.

“더 있다 가면 안 돼? 너, 너랑 함께 있고 싶은데……. 넌 오랜만에 봤는데 내가 반갑지도…….”

“됐으니까, 빨리 돈 내고 나가라고!”

여자가 울상을 지으며 히스테릭한 음성으로 꽥 소리를 내질렀다.

왕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린 채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는 듯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에게 카드를 내밀었고, 여자가 카드를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왕규는 멍하니 눈앞을 응시하다가 자꾸만 도리질을 해댔다. 충격이 상당한 듯했다. 뇌의 회로가 엉켜 수습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 나가시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부축하고 입구로 향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가 궁시렁거리며 비틀거렸다.

여자가 카드와 영수증을 나에게 건네고 나서 매서운 눈빛으로 왕규를 쏘아보았다.

“어, 소라, 소라 아냐? 내 첫사랑…… 아닌가?”

여자의 강한 눈빛에 움츠러들며 왕규가 웅얼거렸다.

“첫사랑 아닙니다. 저런 여자가 첫사랑일 리는 없죠.”

입구의 문을 닫고 나오며 내가 말했다.


*

어느 날 갑자기 글자가 깨져 보이고 증발되는 증세가 나타났듯이,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증세가 휑하니 사라졌다.

갑자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유가 있는데, 다만 내가 그 이유를 알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밥을 먹은 다음 방에 들어가 무심코 카프카의 『성(城)』을 펼쳐들었다. 한 장, 두 장, 세 장…… 아무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고민이 시작되었다. 다시 출판사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창고에서 계속 일할 것인가?

이제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출렁였다. 생각건대, 출판사에 오래 머물수록 독서와는 멀어지는 역설이 발생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독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떤 책을 보아도 우선은 표지의 디자인에 신경이 쓰였고, 전체적인 레이아웃, 글자의 크기와 배열에 대한 판단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책을 읽다가도 맞춤법이나 문장이 잘못된 것을 발견하거나 오자가 눈에 들어오면 술술 읽어 내려가기가 힘들었다.

카프카처럼 되기 위해 출판사에 들어갔지만, 그것 자체가 오판이었음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 상황에서 다시 출판사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사장 또한 월요일 이후로 전화가 없었다.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하더니, 새로운 직원을 뽑은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창고 일을 계속할 마음 또한 없었다. 왕규와 함께 지낸 일주일간은 그런대로 즐거웠지만, 그런 채로 한 달 이상을 함께 보낸다면 나 또한 필시 알코올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눈앞을 캄캄하게 했다.

이제 꿈이 날개를 접었으니 철저히 현실적이 되자고 나는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