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_의리도 갈고닦는다.

by 아르칸테


서울 신당동 목재거리


톱밥이 하늘에 떠다니고, 못 박는 소리가 심장을 두드리던 곳.



강철은 그 좁고 더운 가구공장에서 사람대접 하나만 믿고 버텼다.



몸으로 돈 벌고, 말없이 일 배우고, 밥은 무거운 손으로 말없이 퍼먹는 시절이었다.



“형님, 오늘도 오십 개 끝내십니까…?”



“지랄 말고 손이나 놀려.”



강철은 씹던 나무젓가락을 뱉고 말없이 망치를 들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일하고 있었는데,



공장 앞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다.



“자릿세 내놔, 이 새끼들아.”



군밤 장수 같은 검정 잠바 입은 남자 셋.



나무 탁자를 밀어 넘어뜨리며 소리쳤다.



“이 구역, 우리 관할이야.



자릿세 내놔. 월 백.”



사장님은 식은땀을 흘리며 한발 물러섰고,



공장 사람들은 못 본 척 고개를 숙였다.



강철만은 달랐다.



“이 자리는 내가 피땀으로 깔아놓은 자리야.



백 원도 못 줘 좋은 말로 할 때 꺼져."



남자 하나가 피식 웃더니,



강철의 목을 확 낚아챘다.



퍽!



강철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첫 번째는 명치, 두 번째는 턱,



세 번째는 걷어차기였다.



세 놈은 나가떨어졌고,



공장 앞엔 말린 톱밥과 사람들 신음소리가 엉켜 흩어졌다.



그렇게 며칠 후



다시 그 조직의 무리들이 나타났다.



“너, 형님이 보자 신다.”



강철은 거절을 했고



이번엔



검은 세단 한 대가 공장 앞에 섰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가 한마디.



“형님이 직접 오셨다. 잠깐 나와봐 꼭 보자 신다."



강철은 말없이 따라나섰다.



그를 데려간 곳은 을지로 낡은 건물 꼭대기.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 안,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도열해 있었고



그 중심에 흰머리, 검은 양복의 남자가 있었다.



“네가 강철이냐?”



“예.”



“우리 애들 다리 몇 개 부러뜨렸더라?”



“부당하게 그러는 건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위스키를 따라 한 모금 삼켰다.



“… 요즘 애들 중엔 드문 놈이네.”



"그런데 이름이 뭐지?"



"최강철입니다"



"강철아



우리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깡패가 아니다.”



“우리는 지랄 맞게 굴지 않아.



가끔 굴욕을 줘야 자존심 꺾이는 놈들도 있어서 그렇지..”



강철은 말없이 앉아 담배 연기를 올려다봤다.



창문 밖, 서울의 어지러운 네온사인.



그는 말했다.



“난 사람을 때리려고 주먹 만든 놈 아닙니다.



근데, 제 사람을 건드리는 놈은… 그냥 못 넘깁니다.”



보스는 피식 웃었다.



“그게 깡패다, 새끼야.”



들어와라.”



"들어와서 네 사람들 제대로 지켜봐라."



“우리는 뒷골목 싸움판에서



사람 살리는 일도 한다.”



강철은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근데…



저는 정당하지 않은 건 못 참습니다.”



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네 방식대로 살되, 우리 방식을 배우는 거다.



그게 조직이다.”



며칠 후.



강철은 다시 공장에 돌아왔다.



그 뒤엔 검정 코트 입은 남자 셋이 줄지어 따라왔다.



공장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형님, 이 사람들은…?”



강철은 말했다.



"아 내가 데리고 왔어 사람 만들려고, "



"야 이것들 배워.



톱질이든 인생이든.



자릿세 뜯는 건 하지 말고.”



그날부터,



서울 목재거리엔 ‘강철 형님’이란 말이 돌았다.



사람은 무서웠지만,



의리는 더 무서웠다.



그의 칼은 남을 찌르지 않았다.



지킬 사람을 지킬 때만 뽑혔다.



그녀는 오랜만에 오빠의 일하는 장소를 찾아갔다.



영란은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코를 찌르는 본드 냄새와 톱밥의 향연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 왔냐?”



강철이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서 있었다.



그러나 옆에 있는 덩치 세 명이 문제였다.



한 명은 삐딱한 모자에 치마 같은 앞치마를 두르고,



한 명은 팔에 호랑이 문신이 보이게 소매를 걷었고,



또 한 명은 톱 대신 권총 손잡이처럼 생긴 드릴을 돌리고 있었다.



“… 뭐지, 이 조합?”



영란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호랑이 문신의 형님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어이, 누구야 여자가 들어올 곳이 아닌데?"



"아.. 저 강철오빠 동생이에요."



아이고야,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형님의 아우들입니다!



형님이 직접 사람 만들어주셨지요.”



영란은 작게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그 순간, 드릴 형님이



“으랏차~ 오늘도 정직하게 나사 조인다!”



라고 외치며 쿵쿵쿵 드릴을 돌렸다.



너무 진지해서 웃음도 못 나왔다.



강철은 묵묵히 영란을 공장 안으로 안내했다.



거기엔 ‘칠공주 장롱’, ‘용의자 의자’, ‘두더지 책상’ 등



센스가 넘치는 수공예 가구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가 만든 거다. 깡패라고 다 나쁜 건 아니다.



주먹질로 밥 벌던 놈들인데… 이제는 손재주로 밥 번다.”



그 말에, 영란은 어딘가 뭉클해졌다.



“정말 오빠가 이 사람들 가르쳤어?”



강철은 담배를 문 채 대꾸했다.



“사람답게 사는 법 알려주려고,



착하게 사는 법 알려주고 인사하는 거 가르쳐주고



정직하게 일하는 거 알려줬다.



늦잠 자면 통닭 한 마리씩 쏘게 하고 하하.”



점심시간.



공장 앞 평상에선 8명의 건달 출신 형님들이 줄줄이 앉아



김치찌개에 계란프라이를 얹어 먹고 있었다.



“야, 이모님! 깍두기 리필요!”



“형님, 그거 계란노른자는 저 좀… 형님!!”



갑자기 자리싸움이 벌어졌다.



“어이, 내 젓가락에 코 박지 마! 나 지금 수양 중이야!”



“수양은 무슨, 김치에 코빠 지겠네!”



영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여기… 진짜 깡패 맞아?”



강철은 식탁 옆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



“이젠 아니야 반깡패야



이놈들, 주먹은 놔도 감성은 못 놓는다.”



식사 후, 한 형님이 영란을 향해 다가왔다.



“동생분, 혹시…



책상 하나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여고 졸업 기념으로, ‘별빛을 품은 서랍장’ 하나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다른 형님이 맞받아쳤다.



“뭔 소리야, **‘울지 마 영란 의자’**가 더 낫지!



엉덩이 닿는 순간, 고민이 사라져!”



그때, 강철이 조용히 말했다.



“그만 좀 하고, 너네 드릴이나 돌려.”



어깨들: “예, 형님!”



그날 저녁,



영란은 공장을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이상한 하루였어.



근데… 나쁘진 않았어.”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단 건 기억에 남는다는 뜻이다.



여긴 기억에 남는 놈들만 산다.”



영란은 문득 민들레 씨앗처럼 가볍고,



어딘가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이상하고



지저분하고



엉망이지만,



진심만큼은 반짝이는 곳.



그게



오빠의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