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_4장 도망 그리고 노래

by 아르칸테

영란은 그 시절,누구도 말릴 수 없는 바람 같았고



잠잠 해질 것 같았던 그 바람도 20대에 조금씩 다시 불어오기 시작했다.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 데뷔의 꿈을 품고 있던 소녀였다. 돈은 늘 부족했고,



그녀는 가구공장에서 일하던 둘째 오빠의 지갑을 털듯 찾아가 돈을 뜯었다.



“오빠, 오백만 줘. 클럽에서 노래 불러야 돼.”



"아 무슨 500백이야 그리고"



오빠는 답답해하며 말렸다. “야 영란아… 제발 정신 좀 차려. 이건 네 인생이야.”



그런 건 돈 없고 힘든 애들이나 하는 거지



그러나 영란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영란이 말을 듣지 않자, 오빠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영란을 데려와 자신의 수하 부하들을 시켜서 영란을 못 나가게 감금한 것이다.



그러나 영란의 성격은 불같고, 갇혀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영란은 오빠의 부하들이 없을 때 이삿짐센터를 전화로 불렀고,



오빠의 집에 있는 모든 것을 팔고 도망을 가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날, 오빠는 미안한 마음에 동생에게 사과하려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그녀는 이삿짐 차와 함께 떠나고 있었다.



“이건 내 인생이니까, 내가 알아서 해!!!”



영란이 그렇게 외치며 떠나자, 오빠는 망연자실했다. “영란아!!



돈 줄 테니까, 제발 그거 다 내려놔!!”



"야 빨리 영란이 잡아!!!."



"누님 누님 안잡혀 주시면 저희가 오늘 죽습니다!!."



그 소리에 그녀는 이긴 듯 차를 세우고, 오빠의 협상대로 따랐다. 영란이 주도한 일종의 ‘계약’이었다.



그렇게 자유를 얻은 그녀는 다시 클럽 무대에 섰다.



며칠 뒤, 영란이가 무대에서 열창을 마치고 나올 무렵, 클럽 입구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영란아…”



둘째 오빠였다. 그는 눈시울이 붉게 젖어 있었다.



“네가 이렇게 무대 위에서 빛나는 건 알겠어. 근데… 아, 가수는 아니야



우리가 그렇게 못 사는 형편도 아닌데 왜 그런 걸 하려고 해 그만하고 오빠 말 좀 들어라.”



영란은 조용히 그의 눈을 바라봤다.



“영란아, 제발 옷 배워라. 네가 만든 옷… 진짜 멋질 것 같아.



무대 말고, 진짜 네 손으로 누군가를 빛내주는 일을 해봐.”



그 순간, 영란은 처음으로 무대 밖의 인생을 상상했다.



그날 밤, 시간이 지나도록 거리를 떠돌다 경찰의 눈에 띄었다. 화장이 진했던 탓에



단속 중인 경찰이 다짜고짜 소리쳤다.



“야, 너 술집 여자지?”



영란을 쏘아보며 외쳤다.



“나 집 가는 중이라고! 건들지 마 건들지 마!



지금 당장 내 오빠 부르라고! 억울하다고!!!”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영란은 유치장에 끌려갔다.



그곳은 다른 규칙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무서운 언니가 다가왔다.



“야, 너 뭔데 그렇게 쳐다봐?”



영란은 물러서지 않았다. “네가 뭔데? 나 기세 안 죽어.”



그렇게 큰 싸움으로 번질 뻔 했던 사건



조용히 마무리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났을 무렵, 유치장 안은 잠잠한 듯하면서도, 서열이라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영란은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주변을 날카롭게 스캔하고 있었다.눈을 깔지 않으면서도,



먼저 시비는 걸지 않는다.



그게 그녀만의 거리두기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걸 불편하게 여긴 수감자 한명이 다가왔다.머리를 반쯤 묶은 채,



슬리퍼를 질질 끌며 앉아있던 여자가 말을 걸었다.



“야, 너 어디서 온 거야?”“...”



영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만 천천히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 눈빛이 문제였다.그녀는 다시 소리쳤다.



“야, 너 지금 나 쳐다보는 거야? 어디서 눈을 그렇게 떠?”



“네가 먼저 쳐다봤잖아.”영란이 조용히 대답했다.



“뭐? 너 미쳤냐?”여자가 손에 쥔 수건을 집어던졌고,



그 순간 영란은 벌떡 일어났다.



“한 번만 더 던져봐. 네 손목을 꺾어버릴 거니까.”



다른 여자 수감자들이 슬금슬금 일어나기 시작했다.눈치껏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가 긴장한 채 ‘누가 먼저 밀리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는 갑자기 욕설을 퍼붓고 영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먼저 가격한 건 영란이었다.



정확하게 배를 걷어찼고,그녀는 쿵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으윽…”



순식간에 뒤엉켰다.머리채가 잡히고, 손톱에 긁히고, 무릎이 허공을 가르고,



그 안에서 영란은 끝까지 기세를 꺾지 않았다.



“야 이 미친년아!!”



“미친 건 너야, 더맞을래?”



“진짜 아악!”



영란은 소리지르는 그 장면을 신기한듯 쳐다보았다.



“아 조졋네 오늘.”



주변 수감자들이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며누가 붙어줄까 망설이던 그 순간,



영란이 머리채를 휘어잡고 단호하게 외쳤다.



“너네가 뭐하는지 모르겠고,여기서 나 쉽게 안 보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입으로 사는 년이 아니라,



맞고도 웃을 수 있는 년이야.”



그녀의 팔에는 긁힌 자국이 선명했고,



입술 옆에는 피가 맺혀 있었지만눈빛은 오히려 더 맑아져 있었다.



그날 밤부터, 유치장의 공기가 달라졌다.



누구도 영란을 건드리지 않았고,그녀가 일어날 때면 작은 숨소리조차 조용해졌다.



그렇게…



영란은 교도소에서도 자신의 질서를 세웠다.




억울하고 분했고,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던 그 자리에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살아내고 있었다.



며칠 뒤, 유치장 문이 열렸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현석이었다. 둘째 오빠 강철의 조직에서 함께 움직이던 부하였다.



영란이를 따뜻하게 대해줬던 현석. 그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며 영란이를 구해준것이였다.



“이 사람 풀어! 얘 건드리면 나랑 일 크게 본다.”



영란이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현석은 말없이 그녀를 데려 나왔다.



두 사람은 근처 다방에서 마주 앉았다.



커피 잔 사이로 조용히 흐르는 시간이 지나고, 현석이 입을 열었다.



“누님, 누님만 보면 마음이 아픔니다. 근데 저, 제가 할말이 있어서 그런데 그것은



그때 조직원들이 찾아와 현석을 불렀다.



"형님, 큰형님이 보자고 하십니다."



제가 잠시 볼일좀 보고와서 말씀드릴게요."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돌아와서… 말하려던 게 있으니까 여기서 꼭 기다려주세요.”



하지만 그는 그날 이후 돌아오지 않았다. 영란은 몇 번이고 기다렸지만,



그가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