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_"현실윤리 실천철학으로 향하는다리."

철학은 결국 현실로 간다.

by 아르칸테
A_Kante


『최소회복윤리』는
감정을 없애는 심리서가 아니라,
감정을 윤리적 판단의 출발점으로
삼는 철학 실천서입니다.
‘회복’이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내 편으로 돌려 세우는 것이며,
그 위에서 이성적인 선택 → 윤리적 실천 →
구조 인식으로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1.재명령 철학의 시작 – 다시 살아낸다는 선언

나는 다시 살아냈다.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 명령한다.

살아만 있지 말고, 살아내라고.

다시 살아냈다는 선언은,

철학이 다시 시작된다는 말과 같다.

재명령은 단순한 동기부여 문장이 아니다.

재명령은 무너진 내가

다시 나를 붙잡기 위해 내리는 윤리다.

그리고 그 윤리는

살아남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살아냈다면, 살아내야 한다.

버텼다면, 이제 걸어야 한다.

무너졌고 다시 일어났다면,

그 다음부터는

삶을 윤리적으로 선택해야 할 책임이 시작된다.


철학은 판단이 아니라 회복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래 철학을

판단의 언어로만 배워왔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그른가.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지 몰라서” 무너지지 않는다.

그들은 알면서도 선택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무너진다.

이걸 놓치면

철학은 강자의 말장난이 된다.

윤리는 살아내는 힘이 없을 때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철학은 회복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시 선택할 수 있는 힘,

그게 철학의 가장 첫 자격이다.

회복 없는 판단은 공허하다.

선택할 수 있을 때만 윤리적일 수 있다.


실천은 이어가는 명령의 윤리학이다

회복은 끝이 아니다.

재명령은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중요한 건

그 명령을 내가 매일 이어갈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천이다.

실천은 힘이 아니다.

실천은 태도다.

“오늘도 내 약속을 지키겠다”는

윤리적 결단의 반복이다.

실천 없는 철학은 관념이고,

실천 없는 회복은 감정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제부터 진짜 윤리는

이어가는 윤리, 걷는 철학, 반복의 윤리로 살아나야 한다.

재명령은

하루만의 외침이 아니라

내 삶을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다.

이제 나는 다시 묻는다.

내가 나에게 내리는 오늘의 명령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걸

내일도 이어갈 수 있는가?

2.윤리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윤리는 무너지지 않는 자를 위해 쓰여졌고,
무너진 자는 늘 윤리의 대상일 뿐, 주체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묻는다.
"그 윤리, 정말 모두를 위한 것이었는가?"

1)윤리의 시작, 누가 말할 수 있었는가

윤리는 늘 말할 수 있는 자의 것이었다.
철학은 말하는 자의 것이었고,
그 말은 자기 입장을 방어할 수 있는 힘, 이성, 정합성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윤리를 말하려면
감정을 억누르고, 자기 삶을 지워내고,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러나 묻고 싶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무너진 자는 어디에 있었는가?

철학의 언어는 침착하고 분석적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무너진 나는, 부정확하고 울고 있었고,
그 울음은, 철학의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렇게 윤리는 말할 수 있는 자만이 말하는 고지의 언어가 되었고,
윤리의 책임은 약자의 회복이 아닌,
강자의 명예와 논리를 위해 동원되었다.


2) 칸트, 니체, 푸코, 레비나스: 누구를 위한 윤리였는가?

나는 이 위대한 철학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부르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밝혀
새로운 출발선을 그리기 위해 소환한다.



"나는 칸트의 이상주의에서 출발했고, 니체의 비판으로 깨어났으며, 푸코의 구조 속에서 방향을 묻고, 레비나스의 타자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것을, 나는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의 철학은 다시, 칸트의 정언명령까지 도달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최소회복윤리’와 ‘현실윤리실천철학’이 해야할 윤리의 길이다."



칸트 – '이성의 명령' 정언명령


칸트는 윤리를 사랑했다.
그는 윤리를,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자기 이성의 힘으로 책임지는 고귀한 인간의 모습이라 믿었다.

그는 감정을 경계했다.
감정은 우리를 흔들고, 우리를 속이고,
도덕을 자기 입맛에 맞게 왜곡하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서 나오는 행위만이 도덕적으로 옳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윤리를 순수하게 지키고자 했던
그의 냉철한 결심과 고독한 고집을.
그가 철학자이기 이전에,
윤리를 위해 철저히 고립된 인간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오늘 나는 또 하나의 현실을 본다.
이성 이전에 감정이 무너진 사람들.
도덕을 생각하기 전에,
자신을 감당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
윤리 앞에 서기엔 너무 지쳐 있고,
규칙을 따르기엔 너무 상처 입은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윤리는 이성만의 것이 아니다.
감정이 정리되지 않으면, 이성은 작동하지 않는다.
울고 있는 당신의 마음에서부터,
윤리는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최소회복윤리』는
당신이 다시 일어나
윤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오도록 돕는 철학이다.
감정을 억누르는 철학이 아니라,
감정을 통과하는 철학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만약 칸트가 오늘의 고통을 봤다면,
그 역시 입을 굳게 다문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른다.




니체 – 스스로 약한 채로 있고 싶어하는 자를 경계한초인의 윤리

니체는 도덕의 기원을 추적하며, ‘약자의 도덕’을 노예 도덕이라 비판했다.
그는 고통을 미화하고, 피해의식을 도덕으로 포장하는 태도를 경계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정말 무너진 자는 윤리를 말할 수 없는가?
복종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버렸다는이유로,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철학의 주어가 되어선 안 되는가?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윤리는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니체의 분노 안에서, 사랑을 보았다.

고로 니체의 독설은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온 호통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을 받아,

치유와 회복의 철학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욕이 아니라 손을 내미는 방식으로.”


푸코 – 감시와 훈육의 시대에 드러난 윤리의 작동 방식

푸코는 윤리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사회적 훈육과 권력의 작동 속에서 구성된 것임을 밝혀냈다.
그의 통찰은 감시와 규율, 지식과 권력이 얽힌 현대사회의 구조를 드러냈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가’를 깊이 질문하게 했다.

사회가 만든 법, 도덕, 규율은 겉으론 ‘모두를 위한 질서’처럼 보이지만,
그 기준은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 설정된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약자를 보호하기보다,
그들을 침묵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억압하게 만든다.

그래서 ‘약자’란 단지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이 아니라,
그 규범을 내면화하여 자신을 감시하고 억누르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검사든 판사든 일반시민이든,


누구든 ‘사회가 정한 옳음’에 무비판적으로 복종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권력에 포획된 약자다.
푸코는 그 구조를 예리하게 해석했지만,
그 시선은 해부에 머물렀고,

어떻게 도덕적 강자가 될 수 있는지,
상처받은 개인이 다시 회복하고 말할 수 있는 윤리의 출구는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너진 자가 감시받는 객체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그는 다시 말할 수 있는 주체로 회복되어야 한다.

감시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비판을 넘어선 회복의 언어다.


레비나스 – 타자의 고통 앞에서 책임을 말한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 앞에서 우리는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통받는 타자 앞에서 침묵하지 말고, 도망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묻는다.
그 타자는 누구인가?

나 자신이 무너졌을 때,
나는 타자의 얼굴이 아니라
내 안의 울음을 먼저 마주해야 했다.

레비나스는 ‘책임’을 강조했지만,
자기 자신을 회복할 권리는 말하지 않았다.
그 결과, 무너진 나는
늘 누군가를 위한 도덕적 ‘수행자’로만 존재했고,
나 자신을 치유할 윤리의 주어로는 말해지지 못했다.


“나는 레비나스의 얼굴 앞에서 멈춰 섰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나 자신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책임 이전에 회복이 있어야 하고,
회복 속에서 다시 책임이 시작되어야 한다.”


회복 윤리는

상처받고,스스로를 끝으로 몰아간 이들이

다시 회복을 선택하고 도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강자 중심 윤리는 완고했다.

“당신은 이성적입니까?”
“그렇다면 윤리적 책임을 지십시오.”


그러나 회복 윤리는 다르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아픕니까?”
“그렇다면, 이제 윤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4) 최소회복윤리가 윤리를 다시 쓰는 이유

우리는 무너진 자를 위해 윤리를 다시 시작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너진 자가 스스로 윤리를 말할 수 있게 되도록 철학의 자리를 낮추는 일이다.

이 책은 윤리를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윤리를 더 근본적으로, 더 절박하게 말하는 일이다.

감정은 철학의 시작이 될 수 있고,
회복은 윤리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있으며,
무너진 자가 실천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는 단지 피해자가 아니라, 철학의 주체가 된다.


5) 그래서 다시 묻는다 — 윤리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윤리는 늘 할 수 있는 자의 언어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지 못했던 자의 침묵에서 윤리를 다시 세운다.

무너졌던 나,
침묵했던 나,
지켜만 보던 나,

스스로 비난하던 나,
그 내가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다시 윤리를 말할 수 있는 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윤리를 살아내기 시작했다.


3.다시 사람 속으로 – 회복된 자의 사회적 재진입


윤리는 고독 속에서 시작되지만,
완성은 사람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언제 철학을 시작하는가?
혼자 있을 때, 무너졌을 때, 세상과 단절되었을 때.
그 외로움의 공간에서 우리는 조용히, 아주 작게
"왜 나는 이렇게 아픈가?"
"왜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품는다.

철학은 그렇게 탄생한다.
그러나 그 철학이 단지 자기 위안이나 고립된 깨달음에 머문다면,
그건 아직 반쪽짜리 철학이다.
진짜 철학은,
다시 사람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에 완성된다.


1) 철학은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회복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되지만,
윤리는 타자와 마주하는 순간에 진짜 드러난다.
왜냐하면, 윤리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타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힘이기 때문이다.

많은 철학자들은 깊은 사유를 혼자 해낸다.
그러나 우리는 고립된 사유만으로는
현실을 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안다.
상처받은 사람일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던 사람일수록,
다시 사람 속으로 돌아가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어려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회복된다는 것은
그 두려움을 조금씩 견디며
다시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한다는 뜻이다.


2) '정체성'이 아닌 '역할'로서의 윤리


많은 사람이 철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되묻는다.
그러나 회복된 자는 그 질문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란 존재는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내가 지금 선택한 ‘행위’와 ‘역할’ 속에서 구성되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위로할 때,
누군가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때,
내가 겪은 상처를 타인을 이해하는 눈으로 바꿀 때,

그 순간 나는 ‘윤리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윤리란 완전한 상태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나 자신을 끌고 타인을 책임지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정체성이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고자 하는 방향이 나를 만든다.
그게 현실윤리다.


3) 다시 관계를 선택하는 용기


회복 이후의 인간관계는 이전보다 더 조심스럽다.
"다시 상처받을까 봐 무섭다"는 마음이
마치 가시처럼 우리의 언어를 움츠리게 만든다.

하지만 회복 윤리란,

상처받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타인을 선택하고,
다시 내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는 실천이다.

그 실천은 거창하지 않다.
어떤 날은 “괜찮아”라는 한마디일 수도 있고,
어떤 날은 말을 아끼는 침묵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제 나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는 것.
다시 현실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윤리를 살아보겠다는 작고 단단한 선언이다.

이 장을 넘어 – 현실윤리 실천철학으로

『최소회복윤리』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철학이었다.
이제부터는
타인을 함께 일으켜 세우는 윤리를 배워야 할 시간이다.

현실윤리 실천철학은 더 이상 혼자만의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와 책임, 구조와 실천, 권력과 윤리의 언어를 함께 배우는 철학이다.

나는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다시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조금 더 배운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 속에서 다시 철학하고,
사람 속에서 다시 책임지고,
사람 속에서 다시 살아가고 싶다.

나는 회복되었기에,
다시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현실윤리의 시작이다.



윤리는 고독 속에서 시작되지만,
완성은 사람 속에서 이루어진다.
- A. Kan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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