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오후 4시 28분.
광장은 숨을 삼킨 듯 고요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말 없이 눈치만 흘렀다.
마치 말이라는 도구가,
누군가를 찌르는 칼이 되어버린 것을 이미 모두가 아는 듯.
“오후5시정각에, 오늘의 투표가 시작됩니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참가자 1인은 공개 처형됩니다.
당신의 감정은 증거가 되고,
당신의 선택은 공범이 됩니다.”
기계음은 감정 없이 그 문장을 읊조렸다.
그러나 그 말은, 사람들의 감정을 증폭시켰다.
박태우가 먼저 움직였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광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주먹을 쥐고, 눈을 치켜떴다.
“좋아, 다들 말 좀 해.
어젯밤 누구 주변에 있었던 사람?
소리 들은 사람?
지금 말 안 하면… 너도 범인일 수 있어.”
그의 말은 다급했고, 절박했다.
누군가는 그를 믿었고, 누군가는 그를 경계했다.
시민88번
"어제 저사람 이상하게 행동하고있더라구요"
시민29번
"무슨소리야 지금 장난 하지마!!"
주성철
"여러분 진정하시고 토론 시간이 많이 없으니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셔야합니다"
시민05번
"당신 어제 저집앞에서 서성이던데 뭐하는 중이였어?"
시민76번
"거긴 저희집이였어요...."
박병철
"아아 엄한 사람잡지말고 정신차리자구요"
그렇게 모두들 살아 남기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중이였다.
백하윤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공포에 빠진 사람들은,
소리 큰 사람을 믿거나,
침묵하는 사람을 죽이죠.
그리고 그 선택은 항상… 후회로 끝나요.”
그렇게 비웃으면서
"게임 속이나,현실이나 별반 틀릴게 없네"
“그럼 당신은? 어젯밤 뭐 했습니까?”
박태우가 되물었다.
“잠잤죠. 저처럼 ‘정상인’은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백하윤은 시선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대답했다.
“웃기고 있네.”
박태우는 이를 악물었지만, 더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 말의 진위를 판단할 여유는, 이제 아무에게도 없었다.
한쪽에서는 김하림이 주저앉아 있었다.
주성철은 조심스럽게 그녀 옆에 앉았다.
“기억… 안 나요?”
“누군지, 말 안 해도 돼요. 그냥… 방향만이라도…”
하지만 하림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그 사람이… 웃었어요.
문을 열면서… 내 눈을 보면서.
근데 아무도… 아무도 안 믿잖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손은 이미 싸늘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켰고, 말은 더 이상 무기가 되지 못했다.
멀찍이 앉아 있던 정동진이 중얼거렸다.
“진실은 늘, 말 많은 사람 옆에 있는 게 아니야.
침묵하는 사람 옆에 붙어 있지.
문제는… 그걸 아무도 안 믿는다는 거지.”
그는 허공을 보며 웃었다.
웃음은 텅 비어 있었고, 말은 메아리처럼 허공을 떠돌았다.
류태림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손엔 작은 노트가 들려 있었다.
그 안엔 하루 동안의 감정 변화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박태우: 질문 중 손이 옆구리로 가는 습관
백하윤: 말할 때 입꼬리 오른쪽만 올라감
정동진: 항상 혼잣말하면서도 사람이 있는 방향만 바라봄
김하림: 말 중간마다 숨 멎음, 눈꺼풀 떨림
주성철: 최대한 이성적이지만 이미 결정되어있는 눈빛.
임주희:사람의감정을 느낄줄만 알지, 해소하지못하는
“투표는 윤리를 가리는 행위가 아니다.
감정을 던지는 방식일 뿐이다.”
그는 잠시 펜을 들었다가, 종이 위에 글씨를 쓰지 않고 멈췄다.
무언가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 5시.
기계음과 함께 첫 투표가 시작되었다.
참가자들은 한 명씩 투표대로 걸어갔다.
긴장한 손. 멈칫하는 걸음.
그들의 감정은, 그 손끝의 글씨로 표현되었다.
박태우 – 굳은 얼굴로 ‘29’을 적었다.
백하윤 – 냉정하게도 ‘29’을 썼다.
주성철 –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29’을 택했다.
정동진 – ‘자신의번호’를 적으며 웃었다.
차민재 – ‘29’을 적으며 속으로 무언가 중얼거렸다.
류태림 – 그의 선택은 화면에 나오지 않았다.
단지 그의 눈빛만이, 깊게 흔들렸다.
전광판에 투표 결과가 떴다.
김하림29번 – 47표
박태우4번 – 7표
백하윤61번 – 5표
주성철 8번- 2표
기타 – 8표
.
.
광장 중앙.
한 줄기 붉은 빛이 한 곳을 비췄다.
그 중심에, 김하림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그녀의 몸은 떨리고 있었고, 발걸음은 한 발 한 발이 무너짐 같았다.
“김하림.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그녀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난… 말했어요.
봤다고 했고…
근데… 아무도 안 믿었어요.”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무서운 건…
그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 눈이었어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떨궜다.
어떤 이는 입술을 깨물었고,
어떤 이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아무도 외치지 않았다.
처형이 시작되었다.
지면이 내려가고, 그림자는 사라졌다.
죽음은 아무런 소리도 남기지 않았다.
아무도 경악하지 않았다.
모두 돌아섰다.
죽음을 본다는 것은, 곧 살아남겠다는 선언이었다.
류태림은 조용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처형된 건 그녀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사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그 가능성을, 우리는 오늘… 손으로 찢어버렸다.”
그리고,
어둠이 광장을 덮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어둠은,
아직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자들 속에 있었다.
밤 7시.
마을의 공동 식당은 조용했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웠고, 국을 떠먹는 움직임조차 죄스러웠다.
죽음이, 같은 식탁 위에 함께 앉아 있는 듯했다.
사람들은 먹었지만,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불안의 대체행동.
“진짜… 죽은 거 맞죠? 연기 아니죠?”
누군가가 입을 열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연기였으면 좋겠네요.”
옆사람이 작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은 금세 입 안에서 식었다.
식당 안의 공기엔 대화가 없었다.
단지 서로를 피하는 눈, 그리고
감정이 읽히지 않도록 만든 표정들이 무언의 대화처럼 오갔다.
구석자리.
박태우와 백하윤이 마주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엔 소음이 없었고, 그 조용함은 오히려 더 위협적이었다.
“당신, 아까 너무 확신하던데. 왜 그렇게까지 29번으로 몰았죠??”
박태우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분노가 아니라, 의심으로 깎여진 날카로움이었다.
“그 애는 불안정했어요. 눈동자, 말투…
자기가 봤다면서도, 결국 누구인지 안 밝혔죠.”
백하윤의 대답은 명료했다.
계산된 어조, 정제된 표현.
이미 자기 방어를 위한 논리를 갖춘 목소리였다.
박태우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혹시… 당신이 그 사람이었으면?”
백하윤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럼 지금쯤 제가 죽었겠죠.”
둘 사이의 공기가 바짝 마른 유리처럼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그 어떤 이도 그 틈에 끼어들지 않았다.
모두 알고 있었다.
감정의 충돌이 곧 다음 죽음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시각, 차민재는 혼자 숙소에 있었다.
책상 위에는 참가자 리스트가 정리돼 있었고,
몇몇 이름 옆에는 작은 기호가 그어져 있었다.
그 중 하나, 김하림29번, 옆엔 이미 사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는 펜을 손에 쥔 채 아무 감정도 없는 얼굴로 노트를 내려다봤다.
“불안은 정보를 무디게 만들고,
감정은 투표를 무기화한다.
인간은 언제나… 예측 가능하다.”
그 말은 혼잣말이었지만,
마치 누군가에게 하는 보고처럼 차분했다.
그의 뒷벽엔,
작은 점처럼 깜빡이는 카메라 렌즈 하나가 있었다.
설계자의 감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
차민재는 그 존재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조용히 노트를 덮었다.
공용 흡연장.
정동진은 담배를 문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앞에 주성철이 서 있었다.
“사람들이 무서운 건, 거짓말 때문이 아니야.
자기 믿음이 틀릴까봐야.”
정동진이 말했다.
주성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맞는 거 같아요.”
정동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봤을 땐, 하림은 진실을 말했을지도 몰라.
근데 사람들은 거기까진 생각 안 해.
진실은 항상 말 많은 놈 옆에 있지 않아.
오히려… 말 없는 놈 옆에 붙어있거든.”
그의 말이 끝나자,
주성철의 시선이 어딘가를 향해 옮겨갔다.
그곳엔, 한 남자.
말없이 광장을 천천히 지나가는 류태림.
류태림은 혼자였다.
마을 외곽, 벤치에 조용히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곁에, 임주희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앉았다.
잠시, 둘 사이에 아무 말도 없었다.
“…죽인 건 우리가 아니죠.
시스템이 그렇게 만든 거예요.
그쵸…?”
임주희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본능이 묻어나 있었다.
류태림은 고개를 젓는다.
“사람은 언제나 시스템을 핑계로 삼는다.
하지만… 투표한 손가락은, 거짓말을 안 해.”
그 말에 주희는 시선을 내렸다.
그녀의 손끝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고 있었다.
“무섭네요…”
그 말에 류태림이 짧게 대답했다.
“무서운 게 아니야.
그건… 감정이 살아 있다는 증거야.”
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다시 침묵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이전과 달랐다.
이번엔, 부끄러운 인간의 감정을 알아버린 침묵이었다.
같은 시각, 마을 곳곳의 숙소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날 밤을 견디고 있었다.
백하윤은 두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얼굴 속에서 스스로를 합리화하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박태우는 침대에 앉아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마음, 하지만
지켜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감각이 혼재돼 있었다.
정동진은 방 벽에 대고 또다시 말을 걸고 있었다.
대화 상대는 없지만, 그는 항상 누군가가 듣고 있다고 믿는 눈이었다.
차민재는 조명을 끄고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눈동자만이, 어둠 속에서 반사되어 작은 빛을 품고 있었다.
류태림은 여전히 관찰 중이었다.
그의 노트 위엔 첫 번째로 사망한 자의 이름 대신,
‘감정 흐름 지도’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는 그날 하루, 사람들의 감정의 리듬,
시선이 모이는 곳, 회피되는 이름,
침묵이 길어지는 타이밍을 정리하고 있었다.
“감정은 진실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은 감정 위에 서지 않으면,
진실을 마주 볼 수 없다.”
밤은 깊어졌다.
광장은 조용했고,
집 안의 불빛 하나 없이 마을은 그림자만을 키웠다.
하지만 진짜 균열은, 그 밤 속에서 조용히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동자 안에서,
말 대신 선택한 침묵 안에서,
그리고 아무도 믿지 않기로 결심한 감정들 사이에서.
“감정은, 진실보다 먼저 온다.
그래서 우리는 늘, 사람을 먼저 죽인다.”
그렇게 조용한듯 조용하지 않은 마피아의 밤은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