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해도 될까요?
[초롱이의 장난, 어른 둘 엮기 대작전]
“엄마~ 대식 아저씨랑 무슨 사이야? 분위기 심상치 않던데?”
카페를 나서며 초롱이가 씨익 웃었다.
“얘 또 시작이네.”
영란은 핸드백 끈을 툭툭 쳤다.
“아무 사이도 아니거든. 그냥 따라다니는 거야, 지가. 내가 부탁한 적도 없고.”
“근데도 왜 같이 다녀? 맨날 밥도 먹고, 차도 타고, 전화도 받고~”
초롱이는 엄마 팔짱을 끼고 장난스럽게 흔들었다.
“이건 그냥 썸이 아니라 거의 연애 2단계야.”
뒤따라오던 김대식이 괜히 기침을 했다.
“에이 초롱아, 너는 또 괜히 민망하게 왜 그래.”
“아니 아저씨, 민망해요? 왜? 혹시 진짜 엄마 좋아해요?”
김대식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좋고 그런 건 뭐, 사람 사이에 정이 생기고 그런 거지.
네 엄마가 워낙 매력이 있으니까.”
“봐봐~ 엄마 들었지? 매력 있대.”
초롱이가 의기양양하게 외치자,
영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야, 그 사람은 원래 누구한테나 다 착해. 착한 게 문제야.
내가 저런 사람 만나서 세 번을”
말을 흐리다가 멈췄다.
“됐고, 너까지 한패냐? 요즘 왜 자꾸 저 사람이랑 나를 엮어.”
초롱이는 한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미션 성공~ 두 사람 말 놓게 하기!”
“미션 취소. 나는 말 놓는 거 싫어해. 나이로는 내가 언니야.”
영란이 잘라 말했다.
“그래도 이제는 좀 다정해졌잖아.
그리고 아저씨, 엄마한테만 존댓말 쓰는 거 좀 어색하지 않아요?”
“어색하긴 해도 니 엄마한테 반말하면 나 죽어.
딱 봐도 존댓말 아니면 내일부턴 차도 못 태워줘.”
김대식이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말했다.
“그건 또 맞지.”
초롱이 킬킬 웃었다.
“엄마~ 혹시 오늘도 대식 아저씨랑 똑같은 색 입은 거 알았어?”
초롱이가 슬쩍 엄마 옆으로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영란이 고개를 휙 돌렸다.
“뭐? 내가 뭔 상관이야 그 인간 옷 입는 거랑.”
“근데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
맨날 같이 밥 먹고, 차 타고, 심지어 카페에서 나올 때는 문도 잡아주잖아.
그거 연애지, 뭐야~ 썸도 아니고.”
영란이 콧방귀를 뀌었다.
“니 아빠도 처음엔 문 잘 잡아줬어.
그놈이 나중엔 문을 던지더라.
어? 문을 던졌어!”
“하하하하!
아저씨 들었죠? 엄마 진짜 사람 무서워하게 만들어요.”
뒤에 오던 김대식이 얼떨결에 머리를 긁적였다.
“아휴 나는 던질 힘도 없어, 초롱아.
니 엄마랑 있으면, 나 그냥 문이 돼야 돼. 문. 자동문처럼 이렇게 척”
“어우, 그럼 말도 자동으로 해야지.
‘여보, 사랑해요~ 삐빅~’ 이렇게.”
초롱이 말에 김대식이 얼굴을 붉혔고, 영란은 팔짱을 풀며 단호하게 말했다.
“에이씨, 무슨 여보야. 여보는 개뿔.
야, 너 진짜 왜 요즘 자꾸 저 사람이랑 나를 엮어.
너 혹시 저 아저씨 마음에 드는 거 아냐?”
초롱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약간 있어.
왜냐면, 엄마 옆에서 그렇게 웃어주는 사람이 요즘 없더라고.”
그 말에 영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틈에 대식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엄마가 좋아서 그런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아, 그러니까..”
“입 조심해요. 지금 거의 탈락 직전이야.”
초롱이와 영란이 동시에 말했고, 세 사람 사이엔 웃음이 터졌다.
언제나처럼, 조용하지만 분명한 따뜻함이 흘렀다.
“아, 근데 엄마.”
“또 뭐.”
“주병진 ○○동 포장마차에서 봤다는 얘기 들었는데?”
영란의 걸음이 멈췄다.
“진짜?”
“친구 언니가 거기서 포장마차 하는데,
며칠 전에 어떤 남자 손님이 ‘주병진’이라고 이름 말하면서 술 마셨다더라.”
“헐, 그 놈 설마 포차에서 일하나?”
“일하는 건진 모르겠고 자주 온다 했대.”
영란은 발검을을 멈추고 멀찍이 걷고있는 대식에게 싸인을 보냈다.
“대식 씨.”
“네!”
“차 대요. ○○동 간다.”
“예 포장마차에는.. 뭐 드시려고요?”
“국물 엎으러 가는 거니까, 메뉴 필요 없어.”
“네??”
서울 ○○동, 밤 9시.
노랗게 빛나는 전구 밑에 놓인 포장마차 천막이 덜컥거린다.
그 안으로 최영란, 김대식, 초롱 세 사람이 나란히 들어섰다.
“하 여긴 냄새부터가 꼴 보기 싫다.”
영란은 자리 잡고 앉기도 전에 주변을 훑었다.
“엄마, 침착. 아무리 그래도 여기 사람들 다 들리겠다.”
초롱이 속삭였고, 김대식은 조심스레 물었다.
“진짜 여기서 본 거 맞다고 했어요?”
“응. 친구 동생이 며칠 전에 여기서 주병진이란 사람 봤대.
기억이 선명하다고 했다니까.”
영란은 입술을 꾹 다물고 말했다.
“이번엔 확실했으면 좋겠다. 진짜 이번엔.”
세 사람은 포차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영란의 시야에 어떤 남자가 들어왔다.
비슷한 체격.
비슷한 눈매.
그리고 허리춤에 손을 올리는 버릇.
“저놈이야.”
영란이 조용히 말했다.
김대식이 고개를 들었다.
“어디요?”
“저기, 3번 테이블. 소주 마시고 있는 남자.
저 눈빛, 내가 알아.”
영란은 벌떡 일어났다.
초롱이와 김대식이 “잠깐만, 엄마!” “영란 씨!” 하고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주병진.”
그 한 마디에,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네?”
“그래, 너. 몰라보겠지. 최! 영! 란!”
“예 누구세요?”
“모르는 척하지 마. 내가 너 때문에 정신과도 다녔어.
스무 살, 우리 둘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가 몰라?”
“저기 혹시 다른 분이랑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김대식이 달려와 중간에서 급히 제지했다.
“영란 씨! 목소리 낮춰요, 여긴 공공장소예요.”
“이게 공공장소야? 그냥 술집이지.”
영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놓았다.
“점. 목에 있던 점. 확인해봐.”
남자가 뒤로 머리를 젖히자— 점이 없다.
“뭐야”
영란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또 아니네”
그때, 포차 사장님이 달려왔다.
“어머, 손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죄송해요. 저희가 사람을 찾고 있어서요.”
김대식이 공손하게 말했다.
영란이 그 틈을 타서 물었다.
“혹시 주병진이라는 이름 들어보셨어요?
여기 자주 온다는 얘기 들어서요.”
사장님은 머리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어 그 이름 들어본 것도 같은데
작년 가을쯤에, 중년 남자 하나가 자주 왔어요.
말수 적고, 혼자 앉아서 소주만 마시던 사람.
주병진이었나 맞을 거예요. 분명 그랬어요.”
“정말이죠?”
“네, 맞을 거예요.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안 나오더니, 그 후로는 못 봤어요.
뭐 어딘가로 이사 갔다는 말도 있고,
여기서 가게 하자는 사람도 있었는데…
암튼 잘생기고 말랐던 사람 맞으면, 그 사람일 거예요.”
영란은 희망의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때 그 사람이 무슨 말 안 했어요?
연락처라든가, 어디 간다든가”
사장님은 멋쩍게 웃었다.
“그냥, 사람 많은 데 싫다고만 했어요.
근데 얼굴도 정확하진 않아요.
사실 이름도 제가 들은 건 아닙니다.
옆 테이블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맞는지는 확실치 않아요.”
“하아”
영란은 의자에 푹 주저앉았다.
“결국 또 허탕이네.”
“와 이게 몇번째야지금!!!”
김대식이 소주잔을 물컵으로 바꿔 따라주며 말했다.
“그래도 단서 하나 생긴 거잖아요.”
“아니야, 웃기는 소리하지마
이건 또 누가 병진이 닮았다고 헛소리한 거지.
이젠 귀신도 주병진이라 부르겠다.”
영란은 진짜 피로한 얼굴로 웃었고
영란은 고개를 푹 숙였다.
숨을 깊게 들이쉬었지만,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이젠 점 있는 놈만 봐도 병진이 같아 보여”
목소리는 낮았지만,말끝이 너무 날카로워서 김대식과 초롱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포장마차 천장을 올려다봤다.
눈은 촉촉해졌지만 울지 않았다.
그게 더 아팠다.
“그때 그놈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 아직도 기억나.”
영란의 시선이 허공에 닿았다.
“‘사랑이란 건, 꼭 붙잡지 않아도 되는 거야.’
참, 멋지지 않냐? 지가 나 버리고 한 말이 그거야.”
김대식은 가만히 물컵을 쥔 손을 내려놓았다.
초롱은 엄마의 얼굴을 살폈다.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랑을 했다고
그게 그렇게 오래 남냐, 이 미련이”
영란은 헛웃음을 뱉었다.
“사람 하나 잊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그녀는 조용히 손을 내렸다.
주먹을 쥐었던 손이 천천히 풀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한 번 쓸어내렸다.
거기, 병진이란 이름이 아직 눌러붙어 있었다.
“이젠 정말
그만하고 싶은데, 이놈의 마음이 안 놔줘.”
그 말에, 김대식은 고개를 숙였다.
초롱은 고개를 돌려 눈물을 삼켰다.
그 순간,
뒤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60대 남자가
흘깃 그들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주병진?
그 사람 교도소 간 거 아닌가”
영란의 눈이 번쩍 뜨였다.
“뭐라고요?”
“에이, 내가 확실하진 않지만
작년에 구치소 갔단 얘기 들은 것도 같고
사기 같은 거였던 거 같은데”
“이봐요! 그게 진짜예요?”
“나도 확실하진 않아요. 어디서 들은 건지 기억도 잘 안 나네”
하지만 그 말은
영란의 귀에 쏙 박혔다.
“대식 씨.”
“네?”
“수소문해요.
이제 교도소 쪽부터 뒤져봐야겠어.”
김대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번엔 진짜찾게 될지도 몰라요.”
“찾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너무 궁금해지네요 이제는
만나면 아주 그냥.”
“아니 나랑 만났던 사이인데 대식씨가 만나서 뭐하게”
그렇게 영란의 감과 촉으로 김대식은 수소문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