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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정체성이라는 감옥

반성 불능자1-3

by 아르칸테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믿고 싶어 한다.

그 믿음은 단순한 자존감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구조적 환상이다.


나는 관찰 과정에서 한 가지 특이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실험대상자 대부분이 스스로를 설명할 때,

이 한 문장을 굉장히 자주 반복했다.


“저는 원래 좀 예민한 사람이에요.”

“저는 원래 사람을 잘 못 믿어요.”

“저는 원래 감정 표현이 서툴러요.”

“저는 그냥 원래 이런 스타일이에요.”

“저는 원래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나는 그 문장에서 이상한 위안을 감지했다.

그들은 ‘그렇게 반응한 이유’를 설명한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 선언은 무언가를 고치려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었고,

자기합리화를 포장한 ‘정체성 방어막’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정체성의 일부로 집어넣는 방식으로

책임의 영역에서 도망쳤다.


나는 그 문장을 이렇게 번역했다.

“나는 바뀔 수 없는 존재다.

그러니 내 행동을 판단하지 말라.”


인간은 정체성이라는 단어에 중독되어 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말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울타리는 대개

자기반성을 막는 가장 단단한 벽이 된다.


왜냐하면 반성이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믿음에 금을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 정체성에 금이 가는 순간,

자기 이미지가 흔들리고,

자기 가치가 의심받는다.

그건 마치 내면의 자아가 해체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심리적으로 말하면,

정체성 해체는 일종의 ‘심리적 죽음’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 죽음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이름표에 매달린다.

그 이름표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적혀 있다.

“나는 상처받은 사람이다.”

“나는 누구보다 감정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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