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까기 인형>은 우연히 '호두까기 인형'을 가지게 된 소녀 마리의 '꿈의 모험담'을 다루고 있는 동화이다. 동화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빠른 전개과 입체적인 구성으로 인해 단순한 동화라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이미 발레 작품 등을 통해서 어른들이 즐기는 것에 전혀 어색함이 없는 작품이라서, 동화책으로 읽는 <호두까기 인형> 역시도 시시하다거나 뻔하지 않았다. 오히려 <호두까기 인형>의 속도감 있는 전개와 다양한 장면 전환은 일반 소설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다. 주인공 마리가 갖게 되는 호두까기 인형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곧 상상이 되고, 그 상상이 꿈의 세계를 오가며 현실을 능가하는 커다란 '인형의 세계'에 빠져드는 전개는 스펙터클할 뿐만 아니라 환상 세계의 묘사가 워낙 디테일해서 읽는 맛이 있었다.
어른이 다 되어 동화를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호두까기 인형>을 읽고 알게 되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풍경을 마음으로 그려본 것이 오랜만이다. 시각적인 정보가 없는, 그러니까 온전히 글로만 입력된 세계를 상상해보는 일을 해본지가 언제였던가. 동화는 바로 그런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호두까기 인형>은 순식간에 나를 유럽 어느 한적한, 눈 내리는 마을의 집안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리고는 호두를 잘 까는 인형을 내 손에 쥐게 만들었다. 이 동화의 주인공 마리가 분명하지 않은 꿈과 현실의 사이를 손쉽게 오가는 동안, 나 또한 그런 시공간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침 겨울이 된 지금, 낮아진 기온과 간혹 내리는 눈 덕분에 겨울이라는 점을 하루도 느끼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날은 없었다. 하지만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보낸 요 며칠 겨울의 날들은 좀 더 풍부하게 이 계절을 상상할 수 있던 계기가 되었다. 사실 번역이 조금 '어른스러워서' 실제 이 책을 읽을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는 읽다 막힐 부분이 조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시리즈로 나오는 책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좀 더 고민해서 다른 책들은 좀 더 쉬운 번역이 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