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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Dec 19. 2018

삶의 태도에 대하여 <그린북>


<그린북>은 대놓고 교훈적이거나 교조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우리 스스로 영화의 교훈을 알아서 읽고 느껴보기를 유도하는 영화다. (비교적) 차별이 많이 사라진 이 시대를 만들어준 선대 사람들의 용기 있는 연대기를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이 영화의 주목적이라기보다는, 백인과 유색인종의 차별이 있던 그 시절 흑인과 백인 두 주인공이 어떻게 인간적인 태도로 살아가려 하는지, 나아가서는 우리들의 인간적인 공동체를 살아가기 위하여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떻게 고민을 풀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린북>은 결과론적인 교훈이 존재하기는 해도 그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영화다. 그 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에 더 집중한다. <그린북>은 실제 역사적 사건을 보여주는 것에 게을리하지는 않지만, 거시적인 역사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셜리와 토니 그들의 태도와 감성적인 순간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그린북>을 다 보고 난 뒤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상보다, 주인공들이 교감하는 순간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린북>은 차별과 소외된 인물들의 아픔을 보여주기 위해 슬픔이나 고통을 전시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영상만 보자면 차별을 받는 순간들은 꽤나 덤덤하거나 오히려 유머로 버무려져 있다. 유색인들을 위한 여행 가이드 책 ‘그린북’이 스크린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 그것이 영화적으로 슬프지도 않고 비교적 무덤덤하게, 오히려 어떤 호기심을 유발하는 단서로 그려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린북'이 상징하는 인종 차별의 사건들은 셜리가 연주 여행을 하는 내내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셜리는 좌절하거나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런 차별에 너무 익숙해져 인이 박혀서일 수도 있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 나 스스로가 인간 답고 품위 있는 존재가 되기를 더 고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린북>은 21세기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바로 그런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다만 시나리오의 문제인지, ‘태도에 관한 영화’라는 점을 정말 분명하게 알려주고 싶었는지, 셜리의 대사는 '품위를 지키기 위한 나 자신'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많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제는 이런 결정을 할 것이며, 앞으로는 어떤 생활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구구절절하게 묘사된다. 그래서 때때로 영화적이지 않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계속 빠져들며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토니와 셜리로 등장한 두 배우가 연기를 정말 잘했기 때문이다. 특히 토니로 분한 비고 모리텐슨의 연기는 무언가 설득력이 떨어지는(좀 거짓말 같은 설정들)도 진짜라고 믿어질 정도로 좋았다. 실화가 영화가 되는 과정에서 실제 토니 후손들이 셜리 유가족의 동의 없이, 그리고 실제와 다른 설정을 집어넣었다고 하여 영화에 대한 감흥이 좀 식기는 하였지만, 비고 모리텐슨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재미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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