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달 Mar 21. 2019

하나도 들리지 않는 영화 <우상>

‘이 영화 문제 있다’라고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가 엉망이다, 배우가 연기를 못한다, 설정이 말도 안 된다, 전개가 뻔하다 등등. 이수진 감독의 영화 <우상>은 문제점이 구체적으로 많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문제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한 편의 영화를 비난하고 까기 위해서는 문제가 되는 지점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짚어야 하는데, <우상>은 문제를 발견하고 지적하기 위한 첫 단추부터 참 어려운 영화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영화다.


어떤 예술적 장르든지 기본적으로는 언어적으로 해석되고 이해가 되어야 한다. 지지도 언어적인 것이고 비판이나 반대도 언어적인 것이니까. 게다가 영화라는 것은 지극히도 대중적인 예술이니까 언어 외적인 다른 감각적인 측면만이 압도적인 것으로 그 가치를 논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우상>은 정말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대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조선족 말도 어렵고 약간의 사투리도 어렵다. 숨 가쁜 50대 중년 아저씨들의 어눌한 말도 다 뭉개져서 들린다. 그래서 <우상>에 수 없이 많은 떡밥과 단서와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언어가 이해가 되지 않으니 다른 비언어적인 떡밥의 맥락도 전혀 파악이 안 된다. <우상>은 감독의 시나리오 구성력이나 아이디어도 문제가 있지만, 우선 오디오와 편집을 욕해야 한다. 그냥 영화의 기본으로서 하는 말이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이 되었을 때, <우상>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이 가능할 것 같다.

 


<우상>은 120분이 훨씬 넘는 러닝타임 동안 대체 무슨 대화를 그들이 나눴고 전개해 나갔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영화다. 이 비슷한 문제점을 계속 논하는 이유는, 그만큼 이 문제가 이 영화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우상>의 제목 ’우상Idol’이 대체 무엇인지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려지는 그림이 있을 테니, 그것만 기대하고 보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우상’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기도 어렵다. 물론 '우상'이 한국 사회-정치계를 잠식하는 허울과 명목뿐인 그 어떤 높은 것, 대단한 명예와 권력을 조롱한다는 의미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적인 추측과 상상은 굳이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한국 영화 트렌드를 대충이라도 아는 사람은 다 때려 맞출 수 있는 상징성이다. 그래서 ‘우상’에 대한 감독의 독특한 발상이 무엇인지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 이해를 못했으니까. 다만 이수진 감독이 무언가 한국 사회의 비판을 하려 할 때 ‘꽂힌 무언가’가 바로 그 우상이라는 개념이라는 것은 알겠다. 다만 그것에 본인만! 너무 강렬하게 꽂힌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뿐이다. 어째서 <적의 사과>,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이 이렇게 헤매는 영화를 만들었는지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우상> 개봉을 앞두고 오디오 수정이나 자막을 꼭 달아주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에릭 쿠의 카메라가 밀착한 것 <우리 가족: 라멘 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