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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Mar 28. 2019

어느새 빨려든 삶의 정치학 <바이스>

정신 놓고 있다가 어느 순간 ‘말려드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말을 아주 잘하거나, 흘러가는 분위기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거나, 아니면 왠지 그냥 내가 빨려서 들어갔다거나. 모두 어떻게 설명하기 난감하기 이를 데 없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의 결과적인 총체가 그럴 때가 있다. 영화 <바이스>는 왠지 그런 느낌이었다. 평범한 남자의 일대기를 좇아가며 보다 보니, 별안간 대단한 사람의 결정적 순간까지 보게 되었다는 것. 영화가 상징하는 ‘미끼’라는 것도 그렇다. 아주 커다랗고 확실한 시작이라 보이지는 않아도, 결국엔 그것이 시초가 되고 많은 것들을 빨려 들게 한다는 것을. 


<바이스>는 얼핏 보았을 때 약간은 똑똑한 구석이 있어도 거의 평범한 중년 남자의 평범한 삶을 비추는 것에서 시작한다. 좋은 대학은 나왔지만 변변찮은 전기 배선공 일을 하는 딕 체니. 욱해서 술집에서 사고도 일으키던 그에게 부인은 크게 화를 내며 다른 사람이 되어달라 부탁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딕 체니는 부인의 부탁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조금씩 변하는 딕 체니는 어느 순간 미국 정치계의 거물이 되어있고, 급기야 국제 정세를 크게 흔드는 사건까지 추동하는 인물-미국의 부통령이 된다. 딕 체니가 이런 거물이 되기까지의 ‘방법’은 사실 영화에서 대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말로 하자면 ‘권모술수’에 능해야 한다는 것 정도가 되려나. 권모술수는 이 영화가 사회를 비추는 초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괴짜같으면서도 흥미로운 코미디 영화로 보아도 괜찮은 특징으로 발휘된다.



<바이스>는 이런 성격을 지닌 딕 체니의 캐릭터를 조명하는 영화이면서도, 단순한 전기 영화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주인공의 생애를 다루기는 하지만 주인공을 둘러싼 사건과 인물 묘사도 상당히 입체적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이스>는 무언가 다른 뜻으로서 아주 정치적인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나의 판단과 선택, 주변 사람과의 관계, 사회에 대한 모든 것이 ‘정치적’ 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에 가깝다. 


전작 <빅쇼트>를 만든 아담 맥케이 감독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본인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노골적이기까지 한 감독이다. <바이스> 역시도 종종 튀어나오는 노골적인 유머와 드립에 관객들이 자주 박장대소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 차려보니 내가 이 영화에 언제부터 말려들었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런 감상을 전략적으로 구성한 것 또한 <바이스>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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