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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un 15. 2017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들의 반복되는 꿈 <하루>

예상 가능한 쾌감의 영화를 예상 가능한 선에서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시시하지는 않다. '이 영화는 순도 100% 허구의 이야기이며, 당신은 이것을 픽션으로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라고 보란 듯이 쓰여있는 영화라 한들 그렇다. 꿈의 세계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하루>는 이런 허구성에의 선언을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으로도 하고 있다.


의료봉사를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 의사 준영은 딸을 잃는 꿈을 연속해서 꾸게 된다. 딸의 교통사고 장면이 꿈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오늘은 딸과 만나기로 한 날인데 반복되는 꿈들의 끝엔 항상 딸의 죽음이 운명처럼 서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악몽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꿈이 반복되면서 그 결말은 어김없이 딸의 죽음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이제 예지몽이된다. 문제는 이 사내가 꿈을 계속 의식하고 기억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이 꿈은 주인공의 현실 속 운명을 바꾸기 위한 수많은 단서들을 찾아 헤매는 보물 찾기의 공간이 된다. 현실에서 그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운명을 거부하고 바꾸기 위해서는 바로 그 꿈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꿈의 공간에 대한 수많은 의식적인 탐색들로 이루어진 <하루>는 그것을 결국 현실에 데려와 거스르고야 마는 위대한 아버지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꿈'을 다루는 영화는 항상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초대한다는 사실 말이다. 환상은 그저 환상일 뿐이니 스크린을 통해 즐기면 된다고, 무궁무진하고 다양한 해석을 그야말로 꿈처럼 하면 된다고 꿈을 다루는 영화는 우리를 자유로운 세계로 초대하고야 만다. 이것이 바로 꿈을 다루는 영화의 미덕이다. 아버지로 분한 김명민의 고군분투는 마치 그런 위대함에 대한 찬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까지 모든 장면이 열심이고 힘겹기만 하다.


그래서 일견 딸의 죽음을 내다본 아버지가 그 운명을 거슬러 딸의 죽음을 막는다는 이 영화는 마치 '테이큰'과 같은 아빠 영웅의 서사를 담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걸 수 있을 정도로 딸을 위협하는 살인범에게 애원하고, 공격하고, 결국은 살리고,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다양한 방법을 다 써가며 딸을 구하려 하니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액션 영화를 어떻게들 소비하고 있는가(<하루>의 대부분의 장면은 액션이 빠지지 않는다). 우리는 액션 영화가 얼마나 자유로운 일탈을 물적으로 보여주는지를 익숙하게들 알고 있다. 액션은 이런 자유로움과 육체적인 쾌감을 가장 잘 전시하는 장르다. 그리고 이런 액션 영화에 그 어떤 사회적 함의도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죄의식 없는 카타르시스로 전유할 수 있다.



그래서 아무튼 주인공은 딸은 구하긴 구하는데... 우리는 이 영화가 희망적인 결말인 것도, 결국 구했다는 그 행복한 결말도 결코 행복하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꾸만 상기되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하루>의 이런 환기는 영웅 서사에 실패한 우리들의 현실을 다시 상기시키는 영화에 가깝다.


우리는 <하루>를 꿈의 상상력대로 자유롭게, 불행한 결말을 뒤집은 희망적인 미래를 현실로 데려와 희망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하루>의 꿈은, '관객들'이자 '우리들'의 경험과 무의식을 건드리고야 만다. 그것은 선한 이의 죽음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2년 전 우리 모두의 미안한 경험이다.


<하루>는 우리가 현실에서는 닿을 수 없었던 선한 사람들의 희생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수많은 메타포들은 대놓고 그 슬픔을 현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영화이기 때문에, 그리고 꿈이라는 창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마치 그때처럼 말이다. 한 달과 하루를 더 보탠 5월 17일에 벌어진 <하루>의 '하루'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우리들의 반복되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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