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달 Jun 22. 2017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주인공과 함께 호흡하며 읽어 내려간 담론들

나폴리 시리즈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읽고) 있다. 장편 소설을 흥미롭게 읽는 일은 마치 연속극을 챙겨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1권 <나의 눈부신 친구>와 2권 <아주 새로운 이야기>의 연속은 바로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설의 내용적으로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작가의 필력 또한 그러하다. 더군다나 연속극(soap-opera)이라는 장르에 기대하게 되는 통속적이면서도 은밀한 치정의 묘사는 이 방대한 분량의 소설이 왜 인기를 끌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나폴리 시리즈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1권과 2권의 순수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과는 언뜻 다른 느낌을 준다. 이들 주인공이 청년기를 거친 후 어떤 '독립'의 기점에 도달한 중년기에 이르렀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더불어 2권까지 이어졌던 레누와 릴라의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질 수 없었던, 자발적인 상호 운명적인 관계에 무언가 변화가 올 것이라는 느낌까지 준다.


그래서 3권은, 나폴리 시리즈가 가진 매력의 정점이라고 콕 집을 수 있을 법한 주인공의 절정기와 역사를 다루고 있다. 1권과 2권의 어린 시절을 거쳐 3권에서는 이들 주인공들-충동하고 질투하며, 내면의 파도가 끊임없이 치던 레누와 릴라가 드디어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가(물론 남녀에 대한 것을 포함한다) 그만큼 어른으로서 가능한 담론들을 다루는 것으로 확장되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청년기를 거쳐 장년이 된 이들을 통해 마땅히 혹은 장편소설의 사명감으로 해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그들이 자라온 환경과 시대에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런 담론을 피해갈 수 없는 시절 그 자체이기도 하다. 각각의 이해집단과 각각의 사상, 성, 결혼과 이혼, 젠더, 혁명에 대한 이야기까지. 수많은 담론들이 레누와 릴라의 인생을 관통하며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내뱉어지고 몸을 타고 행동으로 묘사되어 있다. 


3권에 이르러서 레누와 릴라는 본격적으로 68 혁명과 사회주의가 세계를 뒤흔드는 격변의 시기를 살게 되는데, 이러한 시대적인 거대 담론들은 유달리 생각이 많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레누를 통해 이전의 1, 2 권에서보다 더 내밀한 자기 목소리로 들려온다. 문득 이런 생각이 더 깊게 든 이유는, 길고 긴 나폴리 시리즈 3권에 이르기까지 길다면 긴 시간이 필요하긴 하였지만, 과업이나 숙제처럼 억지로 읽은 것이 아니라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이 호흡하며 읽었기 때문이다. 1, 2권에서 학생이었던 화자가 3권에 이르러 전업 소설가가 되어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화법으로 말하게 된-작가의 자의식이 틈입할 수밖에 없는 '소설가가 쓴 소설가의 이야기를 읽는'-효과의 극대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시대의 역정을 좇는 장편 소설에서의 '발견'은 독서를 하는 자의 내면에서도 이루어지는 것 같다. 작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장편 소설은 역사를 읊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콘텍스트적으로 많은 장점을 찾을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순전히 독서 그 자체에 심취하여 그 길고 긴 소설을 읽어내고야 마는 독자의 행위 자체에서의 유의미성이라고 해야 하나, 행위 그 자체에 대한 발견이 이루어진다. 하루 만에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는 독자에게도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고 상상하게 한다. 오랜만에 길고 긴 소설을 진득하게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들의 반복되는 꿈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