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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Aug 04. 2016

당신은 언제라도 날 떠날 수 있어요

동네 길거리에는 루시드폴이 8월에 공연을 한다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우리 집 앞에도 붙어 있더라고.

그래서 루시드폴의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노래는 잘 모르지만 왠지 이것도 어디론가로 여행 나갈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될 것 같았다. 무슨 공원 안에 있는 공연장에서 한다고 하네. 공연장이 꽤 시골에 있는지라, 교통편이 조금 걱정되긴 했는데 버스 시간표를 찾아보니 막차도 넉넉해서 오고 가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표를 날름 사버렸다. 일단 사고 루시드폴의 노래를 하나하나 듣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노래는 딱 하나뿐이니..


유튜브에서 찾아들어보니 개중엔 언뜻언뜻 들어서 아는 노래도 있었다. 친구들이나 가족이 흔히 듣곤 했던 익숙한 이름의 이 가수는, 나 역시 노래도 알게 모르게 익숙해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보이나요'의 가사를 읊던 날은 많았다. 내 마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 그 노래를 들어보니, 그때 내가 착했던 만큼 그 노래도 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말갛게 들리는 노랫말이 깨끗했고 그때의 말갛던 내 얼굴도 떠올랐다.


오늘의 내가 들을 수 있는 루시드폴의 노래는 뭐가 있나 또 하나하나 들어보기 시작했다.

'그대는 나즈막히'라는 노래가 그냥 말처럼 들려왔다. 누군가가 이렇게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스쳐가는 말이라도 그렇게 얘기 말아요 나에겐 그대는 언제나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사람

사랑하는 나에게는 모질게 얘기 말아요 언젠가 마음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부탁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언제나 희망사항이지만,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그런 게 지켜진 적은 없다. 

그 이유의 첫 번째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동안 몇 만나지 못했다. 

그 이유의 두 번째는 부탁이 정말로 부탁 같은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걸 왜 나에게 요구하지?' 하며 상대방에게 결국 '왜'라는 의문을 주는 일. '왜'가 불러일으키는 생각의 힘은 세다. 거기서부터 많은 것이 다 부탁 같은 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만이라도 부탁은 하고 싶다. 그건 아마도 단지, 순수하게도, 너와 내가 사랑하고 싶어서 하는 말일 것이다. 사람이면 그럴 수 있지,라고 여기는 일은 많다. 지구 상에 수많은 사람들 중에 너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러지 말아요,라고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지구 상에 수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한 사람에게만 바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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