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뜻지 Jul 14. 2021

담임선생님과  B대면 데이트

코로나 시대의 학교

 코로나 시대의 학교.

 벌써, 1년 그리고 한 학기가 지났다.

  

 나는 생애 첫 학년부장을 작년에 맡았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한 학년부장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혼란의 연속이었고, 답 없는 회의는 끝없이 이어졌으며, 오늘의 회의에서 겨우 내린 결론은 내일이면 엎어지기 일쑤였다. 2월에 미리 짜 놓은 교육과정을 ver.15까지 변경해가며 고치고 또 고쳤지만, 그 교육과정은 결국 운영될 수 없었고 갈기갈기 찢겼다. 참고할 수 있는 예전의 업무 자료들은 코로나의 창궐과 함께 고대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말이야 학교에서 한국민속촌으로 현장학습도 가고 수영체험학습도 갔었단다. 아, 전문 강사님을 초빙해서 리코더 수업도 했었어!

 아이들이 학교에 드문드문 나오기는 했다. 우리는 코로나와 눈치게임을 했다. 단계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이번 주는 원격이래, 오 이번 주는 등교할 수 있나 봐. 급하게 원격수업도 시작했다. 내가 정년 퇴임할 때쯤에나 시작되지 않을까 상상했던 화상수업이 당장 일주일 뒤에 시행이었다. 이전까지 얼굴 붉힐 일 없었던 친한 선생님들과 언쟁도 오고 갔다. 밤잠을 설쳐가며 원격 수업을 준비했지만, 누구도 만족하지 않았다. 학생, 학부모는 물론이고 교사인 나 스스로도. 실제로 배움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 아이들이 누리고 싶은 것들이 온전히 지켜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1주일에 겨우 한 번 등교해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잘 쓰고, 친구와 일정하게 거리를 두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일희일비, 희로애락의 연속이었던 코시국의 나날들. 현장의 이야기를 묶어서 연재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지도 1년, 그리고 한 학기가 훌쩍 흘러버렸다. 방역 단계가 바뀔 때마다 학교 현장은 요동쳤고 초짜 학년부장인 나의 멘털은 바스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나의 결심 또한 방역 단계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렸다. 학교 일을 처리하고 당장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기에 급급했다. 도무지 글을 쓸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물론 구차한 변명이다.

 그 일을 할 시간이 도무지 없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그 일은 한다.

 

 두 문장 사이의 간극을 내내 느끼며,  당장 내 눈앞에 쌓인 일들을 닥치는 대로 처리했다. 글쓰기의 간절함을 잊고 지낸 무감각의 시간이었다.


 7월 중순. 지금쯤이면 대부분의 학교는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1~2주 전이다. 교내 확진자, 밀접접촉자 발생으로 문을 닫았던 때도 간간히 있긴 했지만, 2021학년도 1학기는 우리 학교에서 학년초에 정했던 방침대로 등교 2일과 원격 3일의 등교 방법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방학을 2주 앞두고, 4차 대유행으로 인해 거리두기 단계가 조정되었고 학교는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었다. 교과 수업 진도를 다 끝내고, 학기말에 하려고 계획했던 소소한 꿈들도 함께 날아갔다.

 함께 영화 보기, 보드 게임하기, 비 오는 날 무서운 이야기 배틀,
마피아 게임, 비접촉 교실놀이, 운동장에서 경찰과 도둑, 개별 상담.
모두, 안녕.

 

 아이들이 기대하는 활동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을 목도하며,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래, 작년에도 딱 여름방학 들어가기 1~2주 전에 갑자기 원격수업으로 전환됐었다. 몹시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1학기 내내 여름방학만을 기다리며, 1학기 교육과정을 꾸역꾸역 완성했던 바로 그날이었다. 이제는 몇 차 대유행인지 따져보기도 싫은 @차 대유행으로 인해 갑자기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었고, 나는 교육과정을 원격수업 일정에 맞춰서 다시 한번 수정해야 했었다. 그게 ver.10이었을까?

 몹시 불쾌한 감정과 함께 그때의 당혹스러운 마음도 함께 떠올랐다. 우리 학년은 나 때문에 제대로 안 굴러가는 거 같고, 나는 너무 못났고, 전부 짜증 나고 엉망진창이다. 우리 반 애들은 하필 이렇게 정신 못 차리는 담임을 만났을까. 정말이지 너무 불쌍하다. 그런데 이렇게 1학기가 끝났다고? 우리 반 애들이 이제 학교에 안 나온다고? 그때의 그 황당하고 황망한 마음. 나는 1학기 내내 아이들에게 엄청난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을 만회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물론 올해는 작년과는 상황이 달랐다. 절치부심하며 정말 많이 준비했다. 등교와 원격이 병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역으로 활용해서 블렌디드 러닝을 구현하고자 했다. 100% 만족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기말이 갖는 고유한 느낌을 아이들과 대면하여 공유할 수 없음은 여전히 참 아쉽다. 교과 진도를 모두 다 끝낸 후에 학생도, 선생도 함께 느끼는 뿌듯함과 해방감. 방학을 코 앞에 둔 설렘과 한 학기를 잘 마무리했다는 응원과 격려.

 온라인 수업에서 어떻게 하면 학기말의 이런 느낌을 살려보고 공유해 볼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아이들과 줌으로 B대면 데이트 형식의 상담을 진행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최준과 루피를 엄청나게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상담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거창하고, 이 코시국의 5학년 1학기에 너도 나도 참 애썼다고 다독여주는 그런 자리를 가져볼까 한다. 올해 친구들은 무려 열두 살이니 대화가 무척 잘 통할 것 같다. 아이들 고민도 들어주고, 내 고민도 얘기해봐야지.  

 내일 줌 수업 시간을 마칠 때, 아이들에게 이 활동을 소개하고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과연 몇 명이나 신청을 해 주려나? 학원 스케줄이 바쁜 아이들이지만 부디 많이 신청해주길. 신청자가 너무 많으면 어떡하지 김칫국을 마시며, 최준 성대모사도 연습해야 하나 깊은 고민이 드는 밤이다.


선생님 위험한 사람 아니니까
피하지 않기로 약속 :D

  





ⓒ2021. kantorka All right reserve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