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증 이외에는 상당히 회복되어 얼마 후 일반병동으로 전동 할 수 있었다.
중심정맥관도, 흉관도, 콧줄도, 여러 개의 주사약도, 금식마저도 여전히 함께였지만,
의외로 일반병동에서는 폭풍처럼 몰아치던 감정을 금방 추스를 수 있었다.
드디어 내 품으로 돌아온 조그만 아이 덕분이었다.
비록 합병증이 남아있지만, 가장 중요한 심장은 잘 회복되고 있었다.
아기는 하루가 달리 자라는 모습이 부쩍 눈에 띌 정도였다.
어느새 휑하던 앞머리에 잔털이 소복하니 보드랍게 자라 있었다.
신생아적의 뾰족하던 얼굴은 사라지고 볼살이 꽤 통통하게 보였다.
금식 기간이 길었는데, 수액만으로 아기를 살찌울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 감사했다.
한참 만에야 아이의 살내음을 맡게 되었다.
아이에게 포근한 젖내가 아닌 알싸한 약 냄새가 배어 있어 괜히 코끝이 아렸지만,
말랑하고 따스한 온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하찮은 머리숱을 쓸어 보고, 올망졸망한 손가락을 만져 보고,
품에 포옥 안은 채 콩콩거리는 심장 박동도 느껴보았다.
빠르고, 작고, 가벼운 그 진동이 까맣게 버석 말라버린 가슴을 울렸다.
나를 옥죄던 원망이나 슬픔은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눈앞의 아이를 달래고, 약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재우기에도 바빴다.
아직도 주렁주렁한 여러 주사와 관 때문에 안아 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제한된 공간에서 흔한 육아템도 없이 홀로 맨손 육아를 해야 했다.
행여나 침대에서 떨어지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붙들고서,
짧게 잠들 때마다 화장실과 탕비실을 분주히 쫓아다녔다.
분명 깊이 잠든 것을 보고 씻으러 가도 귀신같이 깨버리곤 했다.
불편한 몸에, 낯선 환경에, 오랜 금식까지, 아이에게는 여전히 힘겨운 시간일 것이었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달랠 때면 한없이 미안하고 애처로웠다.
아이의 배고픔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아이를 안고서 앉은 채로 겨우 선잠을 잤다.
울다 지쳐 잠에 들면 선 채로 식은 밥을 마시듯 해치웠다.
조그만 아이는 몇 주째 굶고 있는데 어찌 밥을 삼키나 싶어 매번 목구멍이 깔끄러웠다.
수면 부족에 울음소리를 내리 듣다 보면, 눈앞이 아득하고 식은땀이 흥건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를 품에 안고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조차 나에겐 위로였다.
일반병동에 올라와 회복해 가던 아기에게 경미한 경련 증세가 종종 나타났다.
긴 시간 마취약과 진정제를 썼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증상이라고, 일단 지켜보자고 했다.
의료진의 답변에도 자꾸만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틈날 때마다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경련의 위험성과 예후들, 수술 후 나타나는 경련의 사례들.
이럴 땐 더 알게 될수록 실체 없는 두려움이 삽시간에 커지는 법이었다.
눈동자의 움직임이 초점 없이 멈출 때,
불러봐도 반응 없이 멍할 때,
팔다리가 갑자기 강하게 떨릴 때,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를 붙들고 초조함에 심장만 벌렁거렸다.
그리고 희뿌연 것이 흉관에서 여전히 흘러나올 때에도..
두려운 순간은 자꾸만 나를 찾아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아픈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란 어떠한 것인지,
한때 그 마음은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애타는, 처절한, 참혹한,
세상에 힘겨운 단어는 죄다 갖다 붙여도 어울리는 그런 마음일까.
세상에 모든 시름을 한데 모아 짓누르는 양 무거운 그런 마음일까.
목숨이든 건강이든, 나의 무엇과 맞바꾸더라도 고민되지 않을 만큼 간절하고,
그럼에도 절대 무너질 수 없는, 무너져서는 안 되는 그러한 것이 아픈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었을까.
운명은 장난처럼 나를 이 자리에 데려왔고,
하얀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를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나의 엄마와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시선을 담은 나의 모습을.
그때 나의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던 것일까.
남편이 다시 휴가를 쓸 수 있게 되어 며칠간 간병육아를 교대하기로 했다.
바로 돌아오지 못하는 거리라 고민되었지만,
빨래도 할 수 없고 체력도 바닥이 난 상태였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겨우 돌아온 우리 집은 익숙하고 낯설었다.
아기 없는 아기 침대만이 휑뎅그렁하니 남아있었다.
밤낮 시끄럽던 조그만 아기, 도와주시던 어른들, 여기저기 널브러진 아기 용품까지 북적대고 정신없는 풍경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텅 빈 아기침대가 아니었다면, 마치 모든 게 꿈이었나 싶은 풍경이었다.
셋이 함께 돌아와야 하는 곳에 나 홀로 서 있었다.
그 강렬한 허전함이 지금까지 꾸역꾸역 눌러온 모든 감정을 할퀴듯 일깨웠다.
셋이 돌아와야 하는 곳에 끝끝내 둘만 돌아왔던 오래전 그날의 기억까지 겹쳐졌다.
짧은 삶의 모든 서글픔과 그리움이 물밀듯이 갑자기 나를 집어삼켰다.
넓은 침대에 누워,
못 자고 못 씻어도 차라리 보호자 침대가 낫겠다는 생각을 하며,
낯설도록 고요한 밤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