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돌아왔다

by 홍노을

어느덧 작은 몸에 달려있던 주사와 관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그사이 조금은 생소했던 갓난아기의 얼굴은 자취를 감췄다.

동글동글 뽀얗고 오동통한 얼굴은, 이제야 내가 원래 알던 아기의 모습이었다.

경련증세도 나타나지 않고, 가슴에 차던 유미액도 거의 나오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 합병증은 약물이나 수술 없이 금식만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오랜 금식이 종료되고 특수분유를 먹이기 시작하면서 아기와 나는 안정을 찾아갔다.

이제야 고된 여정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출산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병원, 호텔 등 객지를 전전했다.

마치 몇 년 동안 병원에 있었던 것 마냥 알싸한 침대가 익숙했다.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은, 바쁘게 반복되는 병동 루틴이 겨우 끌어가고 있었다.

돌아보면 찰나와 같은 순간도, 속절없이 견뎌야만 했던 시간 속에서는 억겁과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우리 가족의 냄새가 배인 이불에서 잠을 깨고, 우리 집 거실 너머 하늘을 보고 싶었다.

그런 지겹도록 평범했던 일상이 그리웠다.

아마 그 병원에서 아침을 맞이한 모든 이들의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아픔 없이 아침을 맞이하고, 두려움 없이 하루가 저무는 것.

소소한 일상이라는 단어가 흔치 않은 곳이었다.


마침내 퇴원하던 날,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기차에 몸을 실었다.

퇴원 일자는 전날에 결정되었기 때문에, 내려가는 기차표 예매조차 쉽지 않았다.

어린 아기와 함께 가니, 퇴원 수속과 기차 시간의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고민깨나 드는 일이었다.

보통 아기들은 생후 백일 전까지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

다행히 생후 60일을 앞둔 아기는 번잡한 기차역도, 덜컹이는 기차도 익숙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사실만으로도 흘러간 피땀눈물을 기꺼이 잊을 만큼 후련하고 평온했다.


아쉽게도 일상으로 돌아온 감회를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아기에게 급성 장염이 왔고, 집에 온 지 나흘 만에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바이러스 검사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는데 항생제 때문인지, 물갈이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 설사와 열이 보일 때는 무언가 잘못되었나 싶어 잠시 긴장했지만,

이내 익숙하게 짐을 챙겨 집을 나섰고 병실에 자리를 폈다.

집에 오자마자 또 입원이라니 씁쓸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병동에서 가장 어린 아기였다.

이맘때 아기들은 면역력도 높고 외출을 하지 않으니 아플 일이 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작은 병(?)으로 작은 병원에 있다는 사실이 못내 다행스럽기도 했다.

이 정도 이벤트는 오히려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 같다는, 실없는 생각도 했다.

나부끼는 갈대 같던 초보 엄마가 비로소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았다.


이번에는 퇴원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다른 가족을 부르지도 않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일상적이래도 아기와 있는 병실은 감옥이 따로 없었다.

사람 마음은 간사한 것이라 했던가,

초심과 달리 단맛을 보고 나니 잠시의 고됨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아기띠도 못하는 어린 아기를 데리고서 캐리어, 소독기, 분유포트까지, 혼자서 어떻게 돌아왔던가 싶다.


이날 아기를 침대에 뉘어 놓고 한참 동안 거실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정말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것 같은 감정이 일렁였다.

끝날 듯 끝나지 않던 챕터의 마지막 장이 바로 지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생의 큰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

매 순간마다 너무나 힘에 부쳤던 짙은 피로,

또다시 이런 고비가 올 지 모른다는 불안,

운명 비슷한 것에 대한 불신,

아이 가슴에 남은 선명한 수술 자국,

그 흉터처럼 내 마음에 남은 부채감까지.

모든 것이 지나가면 마냥 후련하고 행복할 것 같았는데,

모진 풍파가 휩쓸고 간 자리는 생각보다 거칠고 쓸쓸했다.

그렇게 마침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소소하게 행복하고 평범하게 힘든 육아를 했다.

육퇴 후 남편과 아기 사진을 주고받으며 속닥거리고,

젖병 씻기 같은 걸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만성피로와 호르몬 기복으로 우울도 겪고,

아기와 첫 드라이브도 가고,

기념일에 첫 가족사진도 찍고,

우리 세 가족의 일상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백일쯤 특수분유 대신 일반분유를 먹일 수 있었다.

특수분유 때문인지 한동안 살이 잘 붙지 않던 아기는 금방 살이 붙었다.

이맘때 먹는 양도 부쩍 늘면서, 키와 체중이 드디어 평균에 가까워졌다.

아주 보통의 행복이 하나 더 생겼고, 우리 가족은 더욱 평범해졌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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