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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 Aug 22. 2019

스토너, 존 윌리엄스

상당히 제 취향인 소설입니다

영문학을 좋아하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천천히 감성이 전해져 오는 글입니다

문학을 좋아하거나, 촉촉한 감정이 필요하거나, 인스턴트 식품같은 소설들에 질렸다면, 추천합니다

시골 논밭을 지나는 기차 안, 사람이 많이 없는 조용한 도서관, 날씨가 조금 쌀쌀해져서 드문드문 사람이 있는 바닷가, 그런 느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극적이지 않은 소설입니다

In his forty-third year William Stoner learned what others, much younger, had learned before him: that the person one loves at first is not the person one loves at last, and that love is not an end but a process through which one person attempts to know another

-John Williams, Stoner


빈티지  책. 참 예쁘다. 몇 권이 모여 있으면 더욱.


모 팟캐스트에도 소개된 스토너는 짜릿한 소설이 아닙니다. 카타르시스도, 절망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스토너가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스토너는 급하게 끓어올랐다가 비슷한 빠르기로 급하게 식는, 그런 즐거움을 주는 책이 아닐 뿐입니다. 존 윌리엄스가 창조한 윌리엄 스토너는 영웅도, 천재도, 악당도 아닙니다. 소설 속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람에 의해 창조된지라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할 것 같은데, 스토너는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존 윌리엄스는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인지라 롤러코스터같은 희로애락은 없지만, 그렇지만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이 어떤 끌림이 있는, 그런 인물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입니다.


스토너는 그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어느 순간 우리는 하릴없이 그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의 삶이 궤적이 어떻게 변해가고, 어떻게 끝날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어느새 마지막 장을 읽게 됩니다.


미주리의 농장. 스토너가 태어난 곳은 이런 곳이었을까?

소설은 미주리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가 미주리대학교 농대에 진학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때 스토너에게 앞으로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고 물었다면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 다음 부모님의 농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근처에 사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그렇게 살다 삶을 마칠 것 같다고 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운명이었을 것이니까요.


마치 미국의 화가 그랜트 우드(Grant Wood)가 즐겨 그리던 사람들의 인생처럼 말이죠.

Grant Wood, American Gothic (1930)

하지만 그는 교양으로 듣던 영문학 시간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의 만나고야 맙니다.


That time of year thou mayst in me behold
When yellow leaves, or none, or few, do hang
Upon those boughs which shake against the cold,
Bare ruin'd choirs, where late the sweet birds sang.
In me thou see'st the twilight of such day
As after sunset fadeth in the west,
Which by and by black night doth take away,
Death's second self, that seals up all in rest.
In me thou see'st the glowing of such fire
That on the ashes of his youth doth lie,
As the death-bed whereon it must expire,
Consum'd with that which it was nourish'd by.
This thou perceiv'st, which makes thy love more strong,
To love that well which thou must leave ere long.

Shakespeare, Sonnet 73
*최영미 시인의 번역 링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1013029001

아마 스토너가 셰익스피어를 만난 그 때야 말로 이 글에서 유일한 소설적인 순간일 것입니다. 그는 셰익스피이어의 소네트에 반하게 됩니다. 운명같이 셰익스피어의 언어에 매혹됩니다. 그리고, 목가적인 삶은 그에게서 멀어지고, 대신 그의 삶에 영문학, 언어의 아름다움이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갑니다. 스토너는 굴곡이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그의 인생에도 기쁨과 슬픔과 후회가 있습니다.


스토너는 영웅이 되어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지도, 혹은 악인이 되어 독자를 감정의 소용돌이에 떨어뜨리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는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그가 선택한 길, 그의 삶을 걷습니다.


어쩌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 실린 감정처럼, 조용하고 쓸쓸하게. 겨울이 오면 더 이상 나무에 붙어 있을 수 없지만, 계절이 바뀌는 것은 자연의 이치인지라 절망에 빠지지는 않은 채 착실하게 겨울을 준비하며, 조금씩 바스러지는 나뭇잎같이 스토너는 그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독자는 결코 부정적이지 않은 어떤 감정을 느낍니다.


스토너의 인생에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했던 미주리 대학교
What did you expect? he thought again.
A kind of joy came upon him, as if borne in on a summer breeze. He dimly recalled that he had been thinking of failure-as if it mattered.... He was himself, and he knew what he had been.

John Williams, Sto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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