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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May 25. 2022

환상의 나라에서 현실을 마주하는 환상

소울리스좌

생각만 해도 즐거워 매일매일 또 가고 싶어
영원한 행복의 나라 에버, 에버랜-드
기쁨의 바람이 불어와 가슴이 설레네
- 에버랜드 테마송 ver.1 -


어렸을 때는 놀이동산에 입장할 때 들리는 노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갈 때마다(물론 어렸을 때는 미친 듯이 달렸기 때문에 한 발짝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못하지만...)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환상적인 일로 가득한 세계로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놀이동산의 핵심은 환상이다. 환상이 배제된 놀이동산은 거대한 기계들로 가득한 기괴한 공간일 테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놀이동산은 갖가지 방법으로 환상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다채로운 모양의 건물들. 화려하다 못해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색의 향연. 시대를 가늠하기 힘든 직원들의 복장과 극도로 친절한 말투 등.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과함'에 있다. 일상으로 들어오기에는 너무나도 과한 모든 것들을 종합하면 놀이동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부에서 파는 음식들의 가격도 살짝 과한 듯하다)


일상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과함'이 놀이동산에서는 용서된다. 아니 환영받는다. 왜냐하면 일상을 잊기 위해 환상의 나라를 찾아온 우리에게 이러한 '과함'은 강력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여기부터는 일상이 아니라 환상의 나라라는 신호.


그런데 이런 과함 중에서도 과함의 끝이라 불리는 핵인싸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 에버랜드에 있다. MBTI의 I 성향도 E로 바꿔버린다는 E버랜드의 끝판왕, 바로 아마존 익스프레스이다.


아마존 익스프레스 환영 세리머니를 만든 손영훈. 사진 출처: 유튜브 '티타남'
아마존 익스프레스 환영 세리머니를 하는 스태프들. 사진 출처: 한국경제


아마존 익스프레스는 10인승 원형 특수 보트를 타고 밀림을 탐험하는 놀이기구로 에버랜드가 자연농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던 1994년부터 있었던 전통 있는 놀이기구이다. 놀이공원에서 전통 있는 놀이기구라는 말은 사실 장점이라기보다는 단점에 가깝다. 환상의 나라에서 익숙하다는 것 그리고 낡았다는 것은 '환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마존 스태프들은 (좋은 의미로) 엄청나게 과한 환영 세리머니로 아마존 익스프레스에 다시 환상을 불어넣었다.   


대부분의 놀이기구들의 스태프들이 마치 비행기 안내 방송처럼 딱딱하고 경직된 말투로 안내사항을 전하는 것에 비해, 아마존 익스프레스의 스태프들은 전 세계 어느 클럽에서도 볼 수 없는 하이텐션의 댄스와 랩(?)으로 안내를 한다. 개인적으로 클럽의 성지라 불리는 이비자(Ibiza)도 가보았지만 이 정도의 텐션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과함 of 과함의 공간에 절제 of 절제의 사람이 홀연히 나타나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 시작했다. 바로 소울리스좌로 불리는 김한나 씨다.

BBC와 인터뷰를 하는 소울리스좌. 사진 출처: 유튜브 'BBC NEWS 코리아'


그녀의 별명인 '소울리스좌'는 말 그대로 '영혼(soul)이 없는(less) 사람 중에 최고(본좌)'를 의미한다. 영혼이 없는 듯한 눈빛에 댄스와 랩은 군더더기 없이 딱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만 해내는 그녀의 모습에 수많은 직장인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1000만 뷰를 넘게 기록한 그녀의 영상이 이러한 인기를 입증하고 있다.


눈빛에 영혼이 없는 소울리스좌. 사진 출처: 유튜브 '티타남'


이 영상에 달린 댓글들은 대부분 직장인들의 열렬한 공감이다.


눈은 무심하게 자리와 고객 현황을 살피며 입은 쉴 새 없이 속사포로 랩을 하는 직장인의 표본
퇴근 생각만 가득한 몸짓과 벌스가 가사와는 별개로 진심을 전해줌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면서 정보 전달하며 적당한 텐션 유지까지... 이 분야에서 프로는 다르네요


이러한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 단독으로 에버랜드 광고를 찍었고 홍보팀으로 영전(?)까지 하게 되었다.

에버랜드 광고 중 소울리스좌


그렇다면 직장인들은 왜 이렇게 소울리스좌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내 생각에는 그녀에게서 직장인의 환상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모든 직장인들이 꿈꾸는 '최소한의 인풋으로 최대한의 아웃풋을 뽑아내는 환상'을 그녀가 구현한 것이다. 오랫동안의 피와 땀이 어린 노하우로 대충 하는 것 같지만 회사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내는 베테랑 직장인의 모습 혹은 군대 주임원사의 모습을 그녀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런 그녀가 있는 곳은 '현실 0% 환상 100%'의 에버랜드라니 이보다 더 환상적인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는 환상의 나라에서 현실을 본다는 환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소울리스좌통해.


나도 한동안 잊고 지냈던 환상의 그곳으로 떠나봐야겠다. 아~~존조로존!


https://youtu.be/ptCIhrBnWn8



Photo by Andres Ig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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