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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뱀의 발을 제거하는 일

by 캡선생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글을 네 글자로 표현하면 '간단명료'다.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말은 결핍이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다 담지 못한다. 모든 말은 과잉이다. 내가 전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들도 전하게 된다." (출처: 권오형의 <UX 라이팅 시작하기>) 이 말에 따르면 내가 좋아하는 '간단명료'한 글은 '결핍이 아니면서 과잉도 아닌 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간단명료'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파스칼은 "미안합니다. 편지를 짧게 쓸 시간이 없어서 길게 씁니다"라고 썼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 간단명료한 글을 좋아하는 내가 브런치에 쓴 글들을 보면 '간단명료'하다고 평하기는 어렵다. '사족'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실제 뱀에게는 없는 '발', 즉 쓸데없이 덧붙인 무언가로 가득한 것이다.


사족[蛇足]

고사성어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표현 가운데 하나로, 화사첨족(畵蛇添足)의 준말입니다.
《사기》와 더불어 고사성어의 보고(寶庫)인 《전국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초나라에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제사가 끝나고 남은 술을 하인들에게 주었습니다. 하인들이 그 술을 마시려고 모였는데 술의 양이 썩 많지 않았지요. 이에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어차피 부족한 술이니 나눠 마시지 말고 한 사람에게 다 줍시다. 자, 지금부터 뱀을 그리기 시작하여 가장 먼저 그린 사람에게 술을 주는 게 어떻겠소?”
그러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열심히 뱀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한 사람이 그림을 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자, 내가 가장 먼저 그렸으니 술은 내 것이오.”
말을 마친 그가 술병에 손을 갖다 대려는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이 술병을 가로채며 말했습니다. “술은 내 것이오. 당신이 그린 뱀에는 다리가 있으니 어찌 뱀이라 할 수 있겠소? 그러니 내가 가장 먼저 그린 것이오.”

이때부터 쓸데없이 덧붙인 일 또는 군더더기를 가리켜 사족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 [네이버 지식백과] (고사성어랑 일촌 맺기, 2010. 9. 15., 기획집단 MOIM, 신동민) 중 -


굳이 변명을 하자면 매일 쓰는 게 최우선 목표이다 보니 생각을 쏟아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여러 번 보면서 사족을 덜어내는 작업은 게을리했다.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은 너무나 궁색한 변명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노사장과 <비행독서>라는 책을 쓰면서도 느낀 점은 글이라는 것은 처음 쓰는데 드는 시간의 수배는 들여 수정 및 보완을 해야만 비로소 독자들이 보기에 괜찮은 글이 된다는 것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100%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이것은 비단 글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소비자들이 사랑하는 대부분의 제품과 서비스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전성기 소니의 제품도 그렇게 탄생했다.


소니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는 포터블 오디오와 비디오카메라의 개발 비화가 있다. 물을 채운 통에 시제품을 넣으면 부글부글 거품이 나온다. 그걸 보고 "아직 여분의 공간이 있잖아!"라며 한계까지 소형화에 매달렸다는 얘기다. 구타라기 씨의 집념은 이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세상의 상식을 바꾸는 상품이 태어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히라이 가즈오의 <소니 턴어라운드> 중 -


보통 이런 글은 앞으로는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글을 쓰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다짐 대신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언젠가 브런치의 글들을 활용하여 책을 낸다면 그때는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글을 수정할 예정이지만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 . 그래서 매일 글쓰기라는 목표 하에 올리는 브런치의 글들은 앞으로도 뱀의 발이 붙어있을 것임을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그리고 감사 또한 전한다.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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