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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는 세수와 같다

by 캡선생


브런치에서 매일 글을 쓰다 보니 감사하게도 많은 제안을 받고 있다. 특히나 내 글을 본인들의 매체에 실어도 되는지와 같은 기고 제안을.


처음에는 무턱대고 제안에 수락했으나, 다양한 이슈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현재는 내 글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무단으로 수정 재배포를 하지 않으며' 등과 같은 조건에 부합하는 곳의 제안만 수락하고 있다.


이렇게 기고 요청을 받을 때, 해당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크게 놀라곤 한다. 맞춤법은 물론이거니와 문법 그리고 논리가 허술한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마치 술을 거나하게 마신 다음날 아침에 막 일어나 거울을 봤을 때 떡진 머리와 눈곱이 덕지덕지 붙고 입 주위가 허연 맨얼굴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엉망인 얼굴 상태로 중요한 미팅을 나가지 않듯, 나의 글에도 세수가 필요했다. 바로 '퇴고'다.


퇴고(推敲)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음. 또는 그런 일.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가 ‘僧推月下門(승퇴월하문)’이란 시구를 지을 때 ‘推(퇴)’를 ‘敲(고)’로 바꿀까 말까 망설이다가 한유(韓愈)를 만나 그의 조언으로 ‘敲’로 결정하였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 네이버 국어사전 중 -



내가 브런치에 쓰는 대부분의 글은 '퇴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야말로 아침에 막 일어난 얼굴과도 같은 글이다. 매일 쓰는 게 최우선이다 보니 세수와도 같은 '퇴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기고 요청을 받는 글은 간략하게라도 '퇴고'의 과정을 꼭 거치려고 한다. 눈곱도 떼지 않고 미팅에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퇴고의 과정에서 '나'는 '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퇴고를 할 때 숙성의 기간을 갖는 편이다. 글을 쓴 시점과 동일한 사고로는 글을 새롭게 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이 다소 낯설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퇴고에 들어간다.


그리고 독자의 수준을 '책을 읽기 싫어했던 20대의 나'로 상정한다. 그때의 나조차 이해할 수 있고 잘 읽을 수 있는 글이라면 내가 추구하는 '너무 난해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퇴고'에 대한 이 글은 정작 '퇴고'를 하지 않은 글이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면 눈곱도, 침을 흘린 자국도 그리고 떡진 머리도 보일 것이다. 매일 쓰는 글쓰기를 하는 나로서는 감내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누군가가 있고, 또한 공식적인 채널에 올라가게 된다면 세수를 하려고 한다. 퇴고라는 폼클렌징으로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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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Tadeusz Lakot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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