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능 다음날 태연하게 공부하듯

by 캡선생

수능 다음날부터 바로 다음 해 수능을 준비하던 친구가 있었다.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는 따놓은 당상이라고 여겨졌던 그 친구는 시험을 보고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못 갈 것 같다는 것을. 속내야 본인 말고 누가 알겠냐마는 그 친구는 고요한 호수처럼 차분한 모습으로 묵묵하게 공부를 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만화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그 순간에도 말이다. 그 친구는 이듬해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브런치북 수상자가 발표된 2022년 12월 21일에 문득 그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도저히 공부하기 힘든 환경과 감정 상태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공부를 이어나가던 그의 모습이. 나도 그처럼 글을 써보기로 했다. 1%에 든 수상자들의 기쁨과 99% 비수상자의 허탈함으로 소란스러운 브런치에서 묵묵하게 글을 써 보기로.


아이러니하게도 수상자가 발표된 날 내가 쓴 글은 <300일 동안 매일 썼습니다>였다. 글의 '퀄리티(질)'를 논하는 수상발표 날에 나는 '퀀티티(양)'를 논하고 있었다. '잘 쓰고 못쓰고'에 대해 작가들이 고민하는 날에 '쓰고 안 쓰고'의 문제에 나는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10여 년 전 내 친구는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본 <쇼미더머니 11>에서 래퍼 이영지는 수능 다음날 묵묵히 공부하던 내 친구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재범이 평한 이영지의 모습이 말이다.


사진 출처: MNET


잘되는 것보다 잘하고 싶은, 그런 거에 되게 집착을 많이 하는 것 같아서... 근데 확실한 건 진짜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 박재범의 '이영지'에 대한 평 -


'우승'이라는 '잘되기'에 집착하기보다는 '래퍼로서 더 나아지기'와 같이 '잘하기'에 집착을 하다 보니 그녀는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쇼미더머니에 바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TV에 나온 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기는 하지만 내가 느낀 인상은 그랬다.


'브런치 수상하기'는 '잘 되기'라는 목표에 가깝다. '하루하루 더 나은 글쓰기'를 꿈꾸는 것은 '잘하기'에 속할 것이다. 나는 수능 다음날 묵묵히 공부를 하던 친구, 그리고 쇼미더머니에서 '잘하기'에 집착하는 이영지처럼 글을 써보고자 한다. 브런치북 수상은 그저 '잘하기'에 따른 부산물이라 믿으며.



P.S. 브런치북 수상발표일에 <피부 관리하듯, 브레인 에스티틱>이라는 새로운 브런치북을 올렸습니다. 2023년에는 '잘하기'라는 목표하에 더 많은 글과 더 나은 글을 쓰고자 합니다. 수상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작가 여러분 2022년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top10


Photo by Ivan Aleksic on Unsplash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퇴고는 세수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