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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는 글을 위한 퇴고

by 캡선생


<비행독서>라는 책을 쓰면서 느낀 점이 있다.



책을 쓴다는 것은 퇴고를 한다는 의미구나.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의 경우 초고 대비 퇴고를 하는데 든 시간이 10배 이상이었다. 책을 쓰는 대부분은 처음에 쓴 글을 끊임없이 고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인쇄 직전까지도 글을 고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 투성이었다. 더 정확히는 불안함으로 가득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를 군대에 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출간한 책의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내 글에 대한 여전한 불만족스러움은 어찌할 수 없지만, 수십 번의 퇴고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 바로 나만의 퇴고 방법을 찾은 것이다.


작가마다 좋은 글의 기준이 다를 것이다. 나는 '단순 명료한 글', 독자로부터 "글이 잘 읽히네요"라는 평을 들을 수 있는 글을 지향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고, 퇴고도 이에 방점을 두고 하고 있다. 그래서 나만의 퇴고 방법은 '어떻게 하면 더 잘 읽히게 고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이를 위한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멍할 때 읽어보고, 반짝반짝할 때 고친다


아침 루틴 중 하나가 내가 쓴 글을 보는 것이다. 즉 막 일어나서 멍할 때 내 글을 읽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멍한 두뇌는 글과 관련해서 상당히 까칠하다. 조금만 난해해도, 조금만 중언부언해도 머리에 글을 입력하지 않는다. 매우 까다로운 독자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까탈스러운 독자가 지적한 부분을 고쳐보는 것이다.


고치는 것은 멍한 두뇌가 아니라, 반짝이는 두뇌의 몫이다. 사람마다 집중이 가장 잘 되는 시간과 상황이 다를 것이다. 본인의 두뇌가 언제 가장 잘 작동하는지를 살펴보고, 멍한 두뇌가 지적한 부분을 반짝이는 두뇌가 되었을 때 고치면 된다.



2. 타인에게 피드백을 받을 때는 조언보다 반응을 참고


<비행독서>의 초고에 대해서 지인들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지인들이 지적하는 부분은 비슷했다. 다만 그들의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즉 '잘 읽히지 않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비슷했으나, 그것을 어떻게 고치면 좋은지에 대한 의견은 극과 극이었다. 처음에는 피드백을 참고하여 글을 수정했으나, 점점 글이 산으로 가는 느낌이라 최종적으로는 나만의 기준을 갖고 수정을 했다.


세계적인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하지만 그런 '제삼자 도입'과정에서 내게는 한 가지 개인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트집 잡힌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어찌 됐건 고친다'는 것입니다. 비판을 수긍할 수 없더라도 어쨌든 지적받은 부분이 있으면 그곳을 처음부터 다시 고쳐 씁니다. 지적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상대의 조언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고치기도 합니다.

내가 생각건대, 읽은 사람이 어떤 부분에 대해 지적할 때, 지적의 방향성은 어찌 됐건, 거기에는 뭔가 문제가 내포된 경우가 많습니다. 즉 그 부분에서 소설의 흐름이 많든 적든 턱턱 걸린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그 걸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제거하느냐는 작가 스스로 결정하면 됩니다. 설령 '이건 완벽하게 잘됐어. 고칠 필요 없어'라고 생각했다고 해도 입 다물고 책상 앞에 앉아 아무튼 고칩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장이 '완벽하게 잘됐다'라는 일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으니까.

-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양윤옥 번역, 현대문학, 2016) 중 -


여기까지 읽고 "근데 이 글조차 잘 읽히지 않는데?"라는 의문을 갖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의문 혹은 지적을 하는 분이 있다면 크게 할 말은 없다. 현재도 나만의 퇴고 방법을 통해 끊임없이 더 잘 읽히는 글쓰기를 위해 분투하는 중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글에 대한 증거는 '오늘의 글'이 아닌 '내일의 글'이 될 것이다.




Photo by charlesdeluvi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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