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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pr 27. 2023

'때문에'가 아닌 '덕분에'


2021년 12월 강원도 강릉. 막다른 벽 앞에 섰다.


2021년 한 해 동안 마케팅과 컨설팅이라는 본업에서 연이은 불운이 덮쳤다. 수십억 원 규모의 마케팅 캠페인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서 제공한 아이디어를 광고주는 대가 없이 교묘하게 훔쳤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항의를 했으나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문제를 회피했다. 갑을병정 중 '정'을 담당하는 대행사 입장에서 광고'주님'과 끝까지 싸워서 얻을 것은 없었다. 우리는 무기력하게 그대로 6개월의 시간과 비용을 날리게 되었다.


불행은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찾아온다고 하던가? 이밖에도 잇따른 프로젝트 취소 및 주요 멤버의 퇴사 등 우리 회사에는 연이은 악재가 찾아왔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코너에 몰린 복싱선수는 공격을 하지 못할지언정 몸부림이라도 쳐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더 얻어맞고 쓰러지는 일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은 6개월 내내 돌파구를 찾아 헤맸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갈 수 있다'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라는 말을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답은 쉽사리 찾아지지 않았다. 변해야 하는데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무엇을 지속하고 무엇을 새로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갈팡질팡하다가 한 해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었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판(事判)'적 방법으로 답을 찾지 못했으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이판(理判)'적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명리학이 말하는 대로 나를 생(生)하는 동쪽으로 떠났다. 강원도 강릉으로.


명리학에 따르면 사람은 각자가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른 사주팔자가 있다. 말 그대로 네 개의 기둥(사주:四柱)과 여덟 개의 글자(팔자: 八字)라는 뜻이다. 여기서 태어난 일에 해당하는 기둥인 '일주'의 위쪽에 위치하는 글자인 '일간'이 본인을 의미한다. 나의 일간은 '화(火)', 즉 불이다. 그리고 이 불을 생(生)하는 것은 목(木)인 나무다. 불씨를 키우기 위해서는 나뭇가지가 필요하고, 불을 더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나무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방향으로 보았을 때 동쪽이 '목'에 해당한다. 그래서 무작정 우리나라 동쪽 끝인 강원도 강릉으로 떠났다(의미상으로는 정동진이 더 적절하겠지만).


바다도 보고 산도 보고, 카페도 가고 횟집도 갔다. 생각 없이 걷기도 하고 집중해서 책도 읽었다. 강원도가 지닌 목(木)의 힘만 믿고 발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고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을 했다. 그리고 불현듯 한 글자가 떠올랐다. '글'. 단발성으로 쓰는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죽을 때까지 글을 쓰자고 생각했다. 글을 통해 내가 하는 일을 더욱 많은 사람에게 알리자고.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강릉역 근처에 위치한 조그만 카페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비행독서>(소피스트, 2022)라는 책을 출간한 작가도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글을 쓰고나서부터 많은 일들이 잘 풀렸다. 본업에서는 마케팅/컨설팅을 넘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게 되었다. 캡선생이라는 부캐로는 다양한 모임에서 더욱더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었고, 다양한 마케팅 매체에 기고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독서모임인 트레바리에서 <나, 브랜드>라는 모임의 클럽장이 되었다.


2021년을 되돌아보니 연이은 악재 '때문에'가 아닌 '덕분에' 나의 삶은 한 단계 위로 도약할 수 있었다. 편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변화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몸부림을 치며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려움을 느꼈기에 비슷하게 어려움에 처한 사업가나 창업가를 보면 예전보다 더 공감을 할 수 있었고, 작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글'이었지만 , '때문에'에서 '덕분에'로의 전환이 내 삶을 바꾼 근원이었다. 지금 막다른 벽 앞에 서있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나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벽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금은 고통 때문이지만 지나고 나면 크나큰 자양분 덕분일 수도 있다고. 그렇게 믿으며 오늘도 우리 같이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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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kap/235



사진: UnsplashHadi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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