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온 더 블럭>의 패러디이자, 코미디언 이용진이 진행하는 웹예능인 <터키즈 온 더 블럭>이 (너무나도 고루한 표현이지만) 장안의 화제다.
이용진의 재치 있는 진행과 파격적인 질문 그리고 B급 감성이 웃삼위일체(Fun Trinity)를 이루어 회당 조회수 평균 100만~200만을 기록하며 대세 중의 대세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터키즈 온 더 블럭> 최다 조회수를 기록한 '신기루 편', 출처: 스튜디오 와플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는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작가의 웃음소리가 주기적으로 아주 크게 들린다는 것이다. 스태프의 목소리가 녹음되지 않도록 조심조심했던 예전 방송들과는 다르게 스태프의 웃음소리가 날것 그대로 녹음되고 방송되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웃음소리의 주인공을 사람들은 깔깔마녀라고 부르며 그녀가 웃어야 더 재미있다고 할 정도이다. (사실 깔깔마녀는 <괴릴라 데이트> 때부터 존재감을 드러낸 김우경 작가다)
<터키즈 온 더 블럭>의 성공 때문인지 웹예능에서 '깔깔마녀'의 웃음소리 같이 스태프의 웃음소리를 넣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는 마치 <개그콘서트> 같은 공개 코미디의 관객들 웃음을 스태프가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현상은 거슬러 올라가면 '웃음 트랙'이라는 곳까지 다다르게 된다.
웃음 트랙(Laugh Track)은 생방송이 아닌 녹화 코미디 방송을 위해 쓰이는 '미리 녹음된 사람들의 웃음소리'다. 1950년대에 미국의 사운드 엔지니어 찰스 더글라스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통조림에 든 웃음 같다고도 해서 '통조림 웃음(Canned Laughter)'이라고도 불린다.
사진 출처: www.pinkcatshop.com
웃음은 그 전염력이 엄청나기에 남들이 웃으면 나도 속절없이 같이 웃게 돼버린다. 그래서 이러한 웃음 트랙은 전 세계의 많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유용하게 쓰여왔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순간 이 '웃음 트랙'이 작위적이라는 비판이 많이 나오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자취를 감추었던 '웃음 트랙'이 2021년 '깔깔마녀'의 웃음으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돼서 돌아온 것이다.
최근 이와 비슷하게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시 유행하는 기법이 SNS에서도 보인다.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면 최근 들어 부쩍 오타 투성의 게시물들이 자주 보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피겨여왕 김현아의 아름다운 피날레!
몸에 좋은 단벡질이 가득!
이런 게시물들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이 수없이 달린다. "김현아가 아니라 김연아라고요!", "단벡질이라니 요새 기자는 아무나 뽑나요?"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댓글을 받은 게시물은 성공한 게시물이다. 무슨 소리냐고? 수많은 지적 댓글로 인해 유저 참여율(Engagement)이 높아져 SNS 알고리즘은 해당 게시물을 좋은 게시물로 판단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시킬 테니 말이다. 오타 지적을 받아 공짜로 광고를 하는 셈이다.
이 또한 '웃음 트랙'처럼 역사가 오래된 기법이다. 일명 고의적 철자 오기다.
'고의적 철자 오기(Intentional Misspelling)'는 누가 언제 시작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속설에 따르면 미국의 한 레스토랑 사장이 본인 가게 근처의 도로변에 실수로 오타가 있는 광고판을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오타가 너무나도 눈에 띄는지라 지나가던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차를 멈추고 가게에 들러 사장에게 오타를 지적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오타를 지적한 대부분이가벼운 스낵을 구입했던 것이다. 사장은 오타의 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오타를 고치지 않았고 추후에도 광고를 할 일이 있으면 고의적으로 철자를 틀리게 썼다고 한다.
던킨 도너츠는 아래와 같이 이 기법을 조금 더 세련되게 활용했다. 고의적 철자 오기가 아닌 문법 오기로. (참고로 well과 work의 순서가 바뀌었다)
사진 출처: thebigad.com
'웃음 트랙'과 '고의적 철자 오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새롭다고 생각하는 기법들 중 상당수는 왕년에 잘 나갔던 그러나 어느새 잊힌 것들의 재활용이다. 그래서 지금 무언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면 과거를 한번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