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선생 Feb 16. 2023

세 가지 유형의 직장인 그리고 미의식


2022년 연말에 <나의 올해의 책 어워즈>라는 모임을 진행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한 해 동안 가장 좋았던 책을 나누며 연말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자는 취지로 진행한 모임이다. 가장 좋았던 책뿐만 아니라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험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많은 영감이 오갔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한 참여자가 추천한 작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로 유명한 야마구치 슈였다.


마케터이자 컨설턴트이면서 철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 나와 너무나도 흡사해 보였다. 비슷하면 끌린다고, 모임 후에 나는 그의 책 대부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했다.


책을 읽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와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심지어 몇몇 글은 내가 브런치에 썼던 글과 비슷해서 흠칫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타인의 생각을 읽는다기보다 조금 더 고도화된 버전의 나의 사고를 빠르게 훑는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 그의 <HOW TO 미의식 직감, 윤리 그리고 꿰뚫어 보는 눈>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뜨악했다. 조금 더 진중하게 말하자면 '당혹감'이라는 단어가 적절할 것 같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11366



진지해 보이는 표지와는 달리 내용은 100% 만화였고, 그림체 또한 야마구치 슈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순정만화와 명랑만화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할법한 그림체였다. 아차차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구매한 책이니 읽을 수밖에.


중고등학교 때 만화책 위주로 읽을 때는 텍스트가 빽빽한 책을 읽는 게 고역이었는데, 나이가 들어 텍스트로 가득한 책만 읽다가 그림이 주가 되는 만화책을 읽으니 이 또한 고역이었다.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텍스트를 통해서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와 작가가 제시한 이미지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다 보니 꽤나 힘겹게 책장을 넘겨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아니던가? 글로 된 책 보다 더 집중해서 읽으니 어느샌가 어렸을 때 만화를 즐겨하던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가 왜 만화라는 형식을 차용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단순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으면서도 모두가 이해가능한 말투(엄밀히 말하면 에크리튀르(ecriture))를 구현할 수 있는 형식이 만화였던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내 식으로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직장인은 크게 세 가지 스타일로 구분할 수 있다.


야마구치 슈는 사람을, 더 정확히는 일하는 사람을 크게 크래프트형, 사이언스형, 아트형으로 구분했다.


먼저 크래프트형은 시제로 따지면 과거다. 과거의 실패경험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타입이어서 경험이 많을수록 빛을 발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경험에만 의존하기에 새롭고 혁신적인 일은 선뜻 하지 못한다.


두 번째 사이언스형은 현재를 의미한다. 현재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한다. 수치를 기반으로 이야기하기에 객관적이지만, 수치로 말할 수 없는 정성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은 배제하곤 한다.


마지막으로 아트형은 미래형이다. 크래프트형의 경험이나 사이언스형의 데이터와 같은 근거 없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등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타입이다. 과거에 얷메이지 않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장점은 있으나 비즈니스를 위한 아트가 아닌 아트를 위한 아트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 세 가지 유형은 각기 장단점이 있기에 누가 더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조직에서는 이 세 가지 유형을 단계별 혹은 프로젝트별로 적절히 배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계획(Plan) 단계는 아트형, 실행(Do)은 크래프트형, 마지막으로 평가(Check) 단계는 사이언스형이 주도하는 것처럼.



2.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미의식이 중요하다.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야마구치 슈도 이 점에 공감하며 VUCA라는 개념을 언급한다. VUCA는 V(Volatility: 불안정), U(Uncertainty: 불확실), C(Complexity: 복잡성), A(Ambiguity: 모호성)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말로, 1987년에 워런 버누스와 버트 나누스가 리더십 이론을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이를 아주 쉽게 말하면 '알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외부의 기준을 따르기만 해도 문제가 없었지만, VUCA의 시대에서는 외부기준은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외부기준만을 따르기보다는 내부기준인 '미의식'을 생각해야 한다.


미의식은 '진선미(眞善美)'를 어떻게 이해하고 행하는가의 문제다. 야마구치 슈는 '진선미'를 각기 '인식', '윤리', '심미'라고 일컬었다.


먼저 '무엇이 올바른가'를 의미하는 '진', 즉 '인식'이다. 현대인이 '무엇이 올바른가'를 판단하는 외부 기준은 과학이다. 즉 과학적인 방법, 논리와 분석을 통해서 무엇이 올바른가를 따지는 것이다. 과학은 21세기의 가장 강력한 종교이기에 그 누구도 쉽게 토를 달기 힘들다. 하지만 과학이 아직 다다르지 못한 그리고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또한 과학적 사실은 새로운 발견에 의해 180도 뒤집히기도 한다. 그렇기에 논리와 분석이라는 과학적 외부기준 외에도 직감과 이성이라는 내부기준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무엇이 바람직한가'를 의미하는 '선', 즉 '윤리'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에게는 법률이라는 강력한 외부기준이 있다. 법률은 우리에게 선택의 영역이 아닌 의무의 영역이다. 무조건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다만 야마구치 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VUCA의 시대에 법률만 따른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률이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어제의 '합법'이 오늘의 '불법'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타다(TADA) 서비스'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법률이라는 강력한 외부기준 외에도 도덕과 윤리라는 내부기준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무엇이 아름다운가'를 의미하는 '미',  '심미'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이것을 어느 정도 객관화할 필요가 있는데 대표적인 방법이자 외부기준이 '시장조사'다. 시장조사를 통해 그 시점에서 대중이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기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패션이 그러하듯 한 시대의 아름다움은 다음시대의 추함으로 변하곤 한다. 시장조사를 하는 동안 고객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변하고, 시장조사의 결과를 적용할 때쯤이면 아름다움은 추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조사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기준인 '심미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지', '윤리', '심미'라는 내부기준을 키우는 방법이 바로 '미의식'이다.



3. 미의식은 네 가지 방식으로 키울 수 있다.


미의식을 기르기 위해서는 크게 네 가지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회화(Painting: 그림)다. 회화를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관찰력을 배울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더욱 풍부한 통찰을 얻는 힘을 기를 수 있다. 회화를 통해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하는 관점과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철학이다. 철학은 내용 그 자체인 '콘텐츠'는 물론이고 그것을 생산하는데 이르기까지의 깨달음과 사고과정인 '프로세스'또한 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철학자 탈레스가 주장한 "만물은 물로 이루어졌다"는 만물일원론은 현대인이 보았을 때 터무니없는 '콘텐츠'이지만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낸 '프로세스'는 여전히 참고할만한 것이다. 또한 철학을 통해 시대의 천재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한 '모드'를 참고하여 더욱 풍부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세 번째로 문학이다. 문학은 이야기를 통해 '진선미'를 고착하는 것이고, 내가 무엇에 공감하는지를 생각함으로 미의식의 감각을 키울 수 있다. 야마구치 슈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문학을 즐기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등장인물에 공감하는 것이다. 즉 내가 타인이 되어야지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공감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시다. 시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의 힘을 갖게 되고, 작은 정보량으로 풍부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해 내려는 노력이기에,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풍성한 어휘와 또한 그 어휘를 통한 사고의 확장을 이룰 수 있다.



나의 해석을 읽으면서 '정말 만화책 맞아?'라는 생각을 하는 분이 분명 있으리라 본다. 그만큼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해하기 힘든 무거운 책도 아니다. 본인의 메시지를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야마구치 슈는 적절한 지점을 찾은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은 만화책이어야만 했던 것 같다.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top8




사진: UnsplashYana Hurskaya

매거진의 이전글 트렌드를 파악하는 우리의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