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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써야 할까?

by 캡선생


책을 쓸 결심은 책이라는 결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일단 "무엇을 써야 할까?"라는 첫 번째 물음부터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무엇을 쓸지 명확히 정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 질문 앞에서는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것과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에 따르면 얇은 단행본 한 권을 만드는 데도 필요한 분량이 200자 원고지 기준 600매나 된다. 내가 쓰고자 하는 '무엇'이 최소 600매를 채울 수 있는지 이 단계에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책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내가 이 질문에 답하기란 쉽지 않았다. 문제에 부닥치면 늘 그러하듯 일단 책에서 답을 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책만으로 부족하다고 느꼈을 때 다양한 모임에서 이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렇게 해서 나름의 답을 얻었다. 다섯 가지의 질문을 통해 무엇을 쓸지 결정하는 것이다.



1. "나는 무엇을 가장 잘하지?"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600매를 자신 있게 써내려가려면 그것에 대해 잘 아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본인이 가장 잘하는 영역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 이것을 기반으로 책을 써보는 것이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직업이다. 본인의 전문 영역에서 남들과 비교해도 월등히 실력이 뛰어나고 명성 또한 높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본인이 하는 일에 자신이 없을지라도 외부인이 보기에 당신은 전문가일 테니 말이다. 오랫동안 대가를 받고 일을 해왔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전문성이 검증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문가의 시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뻔하고 익숙한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을 처음 보는 대중에게는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직업 외에도 본인이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주제로 삼아도 좋다. 모든 사람은 본인만의 특기가 있다. 그것이 아무리 소소할지라도 분명히 있다.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법, 믹스커피를 맛있게 타는 법 등과 같이 말이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특기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 특기 없음이, 그렇게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특기로 볼 수 있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바라보듯 스스로를 깊고 관심 있게 바라본다면 분명히 하나의 특기가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당당하게 독자에게 말해 주면 된다.



2. "나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지?"


본인이 무엇을 잘하는지는 모를 수 있어도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기 힘들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꾸준히 하는 것, 휴식 시간에 주로 하는 것 등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모르겠다면 더 이상 돈을 벌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자가 된다면 남은 여생을 무엇을 하며 보낼지를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꼭 독특할 필요는 없다. 국민 취미라고 여겨지는 독서와 음악 듣기라도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면 신선한 책이 될 수 있다. 내가 쓴 <비행독서>도 '독서'에 관한 책이다.


거창할 필요도 없다. 일본의 출판사 암흑통신단에서는 <元 円周率1,000,000桁表 (π - 원주율 100만 자리표)>라는 책을 발간했다. 책의 내용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3.14로 시작되는 원주율을 그냥 끝없이 써 내려간 책이다. 이처럼 좋아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책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감정을 어떻게든 잘 전달하는 것이다. 독자도 그것을 좋아할 수 있게.


단순히 원주율을 써 내려간 책. 사진 출처: 아마존 재팬



3. "나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은 무엇이지?"


수많은 이벤트가 쌓여 인생이 되지만 그중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이벤트는 손에 꼽을 수 있다. 즉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는 나라는 독자의 수억 대 혹은 수조 대 일의 경쟁률을 뚫은 인상적인 이야기다. 즉 한 번 검증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각자만의 개성과 기질을 갖고 있기는 하나 인류라는 공동체로서 함께 공유하는 감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개인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은 대중에게도 가장 강렬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 슬펐던 순간, 후회되었던 순간은 책이라는 매체에 담기에 매우 적절한 소재다. 원래 특정한 개인을 그려서 보편적 인류를 나타내는 활동이 예술 아니던가?



4. "사람들에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이지?"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보자. 1번부터 3번까지는 나의 시선에서 시작하는 책이라면 4번은 타인의 시선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즉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개인의 편견이 있을 수 있다. 듣기 싫은 말보다 듣기 좋은 말을 더 잘 기억한다든지와 같은 왜곡이 발생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많이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5. "청개구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까지의 질문들은 일반적인 이야기 소재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다. 조금 더 색다른 이야기 주제를 원한다면 이와 정반대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즉 "나는 무엇을 가장 못하지?", "나는 무엇에 가장 관심이 없지?", "모두가 기억하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지?" "사람들이 나에게 절대 하지 않는 말은 무엇이지?"와 같이 정반대로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책이라는 매체의 존재이유와 매력은 다양하겠지만 그중에서 독자의 관심을 강력하게 끄는 것은 '새로움'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움은 '역발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앞의 1-4번 질문까지 떠오르는 것이 없다면 당신은 5번 질문에 답하기 가장 적합한 역발상 사고자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중에서 2번을 활용하여 첫 책을 쓰고자 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끝까지 책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원동력은 '흥미'와 '재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지?"라는 질문이 나에게는 가장 적절했다.


그렇게 2021년 말 기준 내가 가장 관심 있어하던 두 분야, '독서'와 '모임'을 한데 엮은 주제로 책을 쓰게 되었다. 바로 <비행독서>였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130552



사진: UnsplashRhys Kent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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