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떻게 써야 할까?

by 캡선생


'무엇'을 쓸지 결정했다면 이제 '어떻게'를 고민할 차례다. 어떻게 써야 할지를.


물론 아무렇게나 써도 상관은 없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을 완성할 자신이 있다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특히나 책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라는 생각 없이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다. 그래서 어떻게 쓸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면 대부분 이 단계에서 포기하고 만다.


글쓰기가 본업인 사람도 책 한 권을 쓰는 데 몇 년이나 걸리는데, 일반인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도착지는 정했는데 그 도착지까지 가려면 걸어서 수천 km에 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막막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걷는 것보다 더 나은 교통수단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써야 할까?'라는 질문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책의 주제와 방향성 그리고 목표에 따라 쓰는 방식도, 소요시간도 각양각색일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나와 같은 아마추어가 비문학 책 한 권을 완성하는 것 그 자체를 목표로 했을 때 그나마 수월한 방법을 적어보고자 한다.



1. 옴니버스 책 쓰기


하나의 주제로 일관성 있게 완성도 있는 책을 쓰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거나 경험 많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아마추어 작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인다. 이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옴니버스 형식이다.


옴니버스(omnibus)는 '여러 사람이 함께 타는 마차 혹은 자동차'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작가가 하나의 주제에 올라타는 방식을 옴니버스 책 쓰기라고 부르고자 한다. 힙합에서 하나의 제목과 콘셉트하에 여러 명의 래퍼가 각기 다른 스타일과 가사의 랩을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옴니버스 랩하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책을 책임지고 써나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일부를 담당한다는 차원에서 완전한 책 쓰기가 아니라고도 볼 수 있으나 이 또한 적용 방법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다. 꼭 여러 명이 함께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에 대해 한 명의 작가가 다양한 작가가 된 것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적어보는 것이다. 단편소설 혹은 단편에세이로 구성된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이다. 물론 이를 옴니버스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글의 연속성보다는 하나의 주제하에 다양한 짧은 글을 쓴다는 점에서 그렇게 부르고자 한다.


나는 옴니버스 책 쓰기 방식으로 <비행독서>를 완성했다. 동명의 독서모임에서 만난 책들에 대해 독후감 혹은 감상평 형식으로 공저자인 로히와 반반 나눠 쓰고 그것을 '비행독서'라는 테마로 재구성한 것이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130552



2. 귀납적 책 쓰기


중고등학교 때 분명하게 배웠던 것 같은데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개념 중 하나가 연역과 귀납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X) 1980년대에 태어난 대한민국 남성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1로 시작한다.

Y) 지드래곤은 1980년대에 태어난 대한민국 남성이다

Z) 그러므로 지드래곤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1일 것이다.


위 사례가 전형적인 연역법이다. 일반적인 규칙 -> 사례 -> 결과로 이어지는 구조다. 귀납법은 이와 다르다.


X) 빅뱅의 멤버 모두 1980년대에 태어난 대한민국 남성이다.

Y) 그들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모두 1이다.

Z) 1980년대에 태어난 대한민국 남성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아마 모두 1일 것이다.


연역법과 달리 귀납법은 사례 -> 결과 -> 규칙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책 쓰기를 말하다가 웬 뜬금없는 연역법과 귀납법이지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연역법의 순서보다 귀납법의 순서로 책을 쓰는 것이 더 수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즉 어떠한 대주제와 주장을 상정하고 그에 맞게 논리 정연하게 글을 쓰는 것보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편하게 써보고 거기서 공통적인 규칙 혹은 주장을 찾아내어 묶어보고 대주제와 주장으로 삼는 것이 책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더 편한 방식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이 해보는 것이다. 매일매일 생각나는 것을 써본다. 그리고 몇 개월이 흐른 후에 내가 쓴 글 중에서 공통적인 주장 혹은 감정으로 묶을 수 있는 글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엮는 것이다. 다른 말로 '제목(대주제) -> 목차(소주제) -> 글'의 순서가 아니라 '글 -> 목차(소주제) -> 제목(대주제)'의 순으로 써나가는 것이다.


귀납적 책 쓰기의 가장 큰 장점은 매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주제로 글을 써나가다 보면 막히는 날이 분명 오게 된다. 다만 이와 다르게 매일매일 생각나는 것을 쓰는 것은 그보다 수월하게 글을 써나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기간 동안 더 많은 양의 글을 꾸준히 써나갈 수 있는 방법이 귀납적 책 쓰기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주제 혹은 테마로 글을 묶을지는 나중에 가서 생각해 봐도 늦지 않다. 모든 일에 공평하게 관심을 쏟는 인간 밸런스가 아니라면 분명히 조금 더 쏠리는 주제/생각/감정이 있을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일단 작가 되기>는 이 방식을 주로 활용했다. 카카오 브런치에서 매일 글을 쓰다 보니 글쓰기에 관련된 글이 많아졌고 그것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3. 말로 책 쓰기


글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만,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말을 잘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말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기에 이것은 잘하나 못하나 무조건 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나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만 말로 표현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쉽게 느껴진다. 바로 이것을 활용하는 것이 말로 책 쓰기이다.


이 방식은 터커 맥스의 <The Scribe Method>라는 책에서 주요 아이디어를 얻었다. 방식은 매우 간단하다.


일단 여러분이 준비해야 할 것은 딱 세 가지이다. '인터뷰 주제'와 '인터뷰를 해줄 사람' 그리고 '핸드폰'.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 주는 네이버 클로바노트와 같은 어플을 켜고 인터뷰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인터뷰어의 질문이 '목차' 혹은 '소주제'가 되고, 당신의 답변은 '내용'이 된다. 이렇게 녹음하고 텍스트로 변환된 내용을 조금 더 깔끔하게 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으면 한 권의 책이 된다.


이 방식의 장점은 누구나 쉽고 빠르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가 궁금해할 사항을 빠짐없이 적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글쓰기는 독자를 상상하고 그들의 궁금증을 추측하면서 지적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독자가 궁금해할 사항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다르게 말로 책 쓰기는 독자를 앞에 두고 실시간으로 답을 하기에 독자의 궁금증을 모두 충족시킬 뿐 아니라, 나의 말(후에 글이 될)이 쉽게 이해가 되는지 바로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로히의 <회사가 나아요, 가게가 나아요>는 이 방식을 십분 활용했다. 동명의 모임을 진행하면서, 참여자의 동의를 얻고 모임에서 나온 질문과 답을 녹음하고 이를 편집하여 상당 부분의 책을 완성한 것이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117570



이 외에도 다양한 책 쓰기 방식이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언급한 세 가지 방식은 나와 같은 아마추어가 책을 쓰기에 적절한 방식이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검증했다는 차원에서 여러분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엇을 써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