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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Mar 24. 2022

30일 동안 매일 글을 썼습니다

30

나는 말하는 인간이었다.


표현이 좀 이상하게 느껴질 것 같다. 마치 "나는 노래하는 가수였다" 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글 쓰는 인간'을 다른 종족으로 생각했던 '말하는 인간'이었다. 대학교 조별과제를 할 때도 자료를 작성하기보다는 발표를, 통번역 업무를 할 때도 번역보다는 통역을 극단적으로 선호했던 그야말로 '말하는 인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반장을 할 때 친구들이 내게 말을 잘한다고 이야기를 하던 순간부터 이러한 정체성이 생겼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글 쓰는 인간의 정체성도 사라졌다.


단점을 보완하기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하자는 논리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것을 했을 때의 그 어설픔으로 타인들이 나에 대해 실망할까 두려운 마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말하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중세시대의 요새처럼 견고해져 갔다.


수많은 모임'말하는 인간'으로 과분한 반응을 얻어가고 있을 때쯤 하나의 질문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한 것을 실천하고 있는가?


다양한 모임을 진행하면서 내가 전했던 공통적 메시지는 "Let's make better mistakes" 즉 더 나은 실수를 하자는 것이었다.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은 실수를 하겠다는 다짐과도 같다. 다만 이러한 실수를 통해 더 나은 내가 되고 그것을 발판으로 더 나은 실수를 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 하에서 이런 메시지를 줄곧 전해왔다.


그런데 이런 말을 주구 장창하는 나는 정작 '글 쓰는 인간'으로 실수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말하는 인간으로서 얻은 과분한 평가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더라도 말이다.


브런치에서는 30일 동안 매일 글쓰기를 도전했다. 기존에 쓴 글을 참조한 경우는 있었지만 모두 새로 쓴 글이다. 편당 글을 쓰는데 10~20분 남짓 걸린 것 같다. 실수하겠다는 다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속도였을 것이다. 혹은 말하는 인간의 흔적일 수도 있다.


나에게 30일은 단순히 한 달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Kiss of Judas by Giotto

가롯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고 사제장과 원로들에게 팔아넘겨서 받기로 한 돈은 '은 30'이었다. 하고많은 숫자 중에서 왜 '30'이었을까? 조철수 작가의 <예수 평전>에 따르면 '30'은 왕권을 상징한다. 즉 가롯 유다는 배신을 통해서 단순히 많은 돈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공동체의 왕권을 획득하여 주인 노릇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30'은 나에게 '왕권'을 의미했다. '글 쓰는 인간'으로서 탄생함을 축복하는 왕권. 그 누구도 이러한 의미부여에 동의하지도 그리고 나를 '글 쓰는 인간'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가 이제는 '말하는 인간'임과 동시에 '글 쓰는 인간'이라고 자각했기 때문이다. 이 '30'일을 통해서.



Photo by Martin Reisc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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