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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May 25. 2023

쓰다 보니 나의 이력서: 나음, 다름, 다움, 키움

※ 제가 지금까지 써온 글처럼 '님'자는 생략합니다. 그리고 글에서 '나'는 '우리'의 대체어이기도 합니다. 나 혼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요.


홍성태 교수의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의 북토크 진행을 맡게 되었다. 좋은 인터뷰어는 "인터뷰 대상에 대해 그 누구보다 많이 알면서, 그 누구보다 모르는 척한다"는 평소의 지론대로 북토크 전에 그의 책을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홍성태 교수가 언급한 '나음', '다름', '다움' 그리고 '키움'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좋은 브랜드는 무엇일까?


일단 다른 브랜드보다 나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음으로 충분할까? 아니다. 달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름은 그 브랜드만의 자기다움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더욱더 성장하는 '키움'으로 이어지는 것. 어찌 보면 좋은 브랜드는 이 네 가지의 과정을 끊임없이 순환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마케터로서 혹은 브랜드 컨설턴트로서 이러한 과정을 잘 거쳐왔는가?


이번 기회를 빌어서 그동안 담당한 프로젝트를 아주 짧게나마 정리해볼까 한다.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이와 관련해서 긴 분량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나음


2014 브라질 월드컵 국가대표팀이 입은 공식단복은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갤럭시가 만들었다. 일명 '프라이드 일레븐(Pride 11)'이라 불리는 슈트였다. 이 당시에 나는 갤럭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었다.


갤럭시는 매출 기준 대한민국 남성정장 1위 브랜드였다. 이러한 1위를 강조하는 No.1 마케팅을 꾸준히 진행해 왔고 그 일환으로 2010년도부터 대한민국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단복을 협찬하기 시작했다. No.1이 입는 No.1 슈트. '나음'을 직관적이고 명쾌하게 나타내는 방법이었다.


그전까지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운동복과 같은 편한 옷을 입고 출국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정장을 단복으로 입힌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 어려운 일을 나의 사수가 해냈고 2014년에 바통을 나에게 넘겼다.


바통을 받자마자 캠페인의 핵심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나만의 답을 찾았다. 그것은 공식단복의 명칭이기도 한 '프라이드', 즉 '자부심'이었다. 말 그대로 대표팀 선수들은 공식단복이 아닌 자부심을 입는 것이고, 갤럭시는 슈트가 아닌 자부심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자부심이라는 무형의 개념을 유형화할 수 있는 '상징'이었다. 나는 그것이 국가대표 엠블럼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2010년도에 선수들이 입은 정장은 단복이라기보다는 동일하게 맞춰 입은 정장에 가까웠다. 운동복만 입던 선수들이 멋지게 정장을 입은 모습이 화제가 되었지만 단복의 상징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나는 이 점이 다소 아쉬웠다.

2010 남아공 월드컵 공식단복. 사진출처: 삼성물산 패션부문


그래서 가능하다면 2014년부터는 국가대표의 상징을 가슴에 달았으면 했다. 이 과정은 예상보다 험난했다. 생각지도 못한 반발과 어려움으로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회사 내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 주워서 어렵사리 축구협회를 설득할 수 있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공식단복. 사진출처: 스포츠월드


이외에도 다양한 마케팅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4 명의 소비자 목소리를 후렴구에 넣어 국가대표팀 응원가를 만드는 이벤트였다(내가 작사에도 참가했다). 공식후원사가 아니었기에 '월드컵'이라는 명칭을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없어 '2014'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활용한 캠페인이었다.


https://youtu.be/OJ21-ImyI7w


이 모든 캠페인의 핵심은 무형의 '자부심'을 유형화하는 작업이었다. 다른 말로 '나음'을 감각화하는 작업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2. 다름


2030 남성을 타깃으로 하는 '엠비오'라는 남성복 브랜드를 담당하면서 늘 '다름'에 집중했다. 얼핏 보면 그게 그거처럼 보이는 남성복 시장에서 '다름'이라는 속성은 그 무엇보다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남성 소비자 대부분이 네이비나 그레이 컬러 계열의 슈트만을 구매했기에 상품으로 차별화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대기업의 안정지향적 경향상 전례 없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도 어려웠다. 고심 끝에 차별화되는 마케팅 전략을 보고해도 "성공사례가 있나요?"라는 물음에 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름'을 고민하고 시도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종석 배우와 함께 진행한 이미지 광고였다.


2015년 당시 대부분의 남성복 광고는 멋진 모델이 멋진 옷을 입고 멋진 포즈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군더더기는 최대한 배제하고 사람, 옷, 브랜드 로고만 깔끔하게.


나는 이와는 전혀 다르게 광고를 기획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세계 최초로 (동영상으로 연계되는)QR코드(인스타그램에서 검색 가능한)해시태그를 반영한 남성복 광고를 기획했다. 지금처럼 대부분이 인스타그램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해시태그라는 개념도 새로울 때였다. QR코드는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2030 소비자는 이러한 '다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하고 용기 있게 시도했다. 결과는 대박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2015년도 엠비오 광고. 사진 출처: 삼성물산 패션부문


3. 다움


CJ ENM의 '더엣지'라는 여성복 브랜드의 컨설팅을 맡게 되었다. 엣지는 이미 잘하고 있는 브랜드였다. 홈쇼핑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성하고 있는 그야말로 잘 나가는 브랜드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배가 고팠다. 더 크게 성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정 궤도에 오른 브랜드에게는 '자기다움'이 필요하다. 특히나 앞에 참고할 경쟁자가 없는 1위는 더더욱 자기다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더엣지'라는 브랜드의 자기다움을 고민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패션 브랜드는 일반적으로 '최신' '트렌드'라는 단어로 향하게 되어있다. 구닥다리 옷을 입고 싶지 않은 소비자의 공통된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엣지는 유행을 가장 앞에서 선도하는 브랜드는 아니었다. 유행과 발맞추어 가는 안정적인 브랜드라고 보는 것이 적절했다. 이러한 브랜드가 실체와 다르게 섣불리 '최신' '유행을 이끄는'과 같은 이미지를 내세우면 그 결과는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길을 따르다 사라진 수많은 브랜드를 익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엣지'의 실체를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만 했다. 북극성과 같은 지표가 될 단어를 찾아야만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오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모든 브랜드가 실체와 상관없이 '내일'을 표방할 때 엣지는 '오늘'로 자기다움을 강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어로 따지면 'Every'다. 누구나(Everyone), 언제나(Everyday), 어디에서나(Everywhere)와 같이 오늘 그리고 일상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국어로 '오늘을 스타일링하다', 영어로 'Every Stylish Moment'라는 슬로건을 만들게 되었다.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이자 소비자에게 전하는 다짐이었다.


사진출처: '더엣지' 인스타그램 공식계정


이것을 기반으로 브랜드 전략을 종합적으로 제안드렸다. 그리고 더엣지는 1년 매출 2,000억 원을 돌파하는 초대형 브랜드가 되었다. 컨설팅 때문만은 아니고 내부 임직원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였겠지만 '다움'을 통해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4. 키움


햇수로 4년째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 스케쳐스의 퍼포먼스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스케쳐스 네이버 브랜드검색 페이지. 사진출처: 네이버


퍼포먼스 마케팅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퍼포먼스(performance)를 만들어내는 마케팅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성과측정이 가능한 정량적 마케팅'이라고 말을 하는데 쉽게 말해 숫자로 증명하는 마케팅이다. 그 어떤 마케팅보다 '키움'에 집중해야 하는 마케팅이다.


우리가 퍼포먼스 마케팅을 담당할 당시만 해도 스케쳐스는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브랜드였다. 자사몰도 제대로 구축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즉 이커머스 구축단계부터 안정화단계 그리고 라이브커머스로의 확장까지 키움의 과정 함께 했다. 스케쳐스가 성장하는 만큼 우리 회사의 퍼포먼스 마케팅 실력도 같이 성장할 수 있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라는 말처럼 퍼포먼스 마케팅은 일견 단순해 보여도 세세하따지고 보면 상당히 복잡하고 신경 써야 할 것투성이다. '키움'에 있어서 큰 방향성과 전략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세심하고 꼼꼼하게 실행할 수 있느냐이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것을 달성한 캠페인이다.



쓰다 보니 하나의 이력서를 완성한 것 같다. 브랜드가 그러하듯 사람도 '나음', '다름', '다움', '키움'이라는 순환구조를 통해 완성되어 나간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사진: UnsplashMarkus Wink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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