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균열-어머니의 침묵
어느새 아들의 중학교 입학을 한 달 앞둔 날이었다. 그날은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아침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밤새 쌓인 눈이 녹았다가 얼기를 반복하며 온몸을 차갑게 짓눌렀다. 천근만큼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이불 밖으로 끌어냈을 땐 이미 늦은 시각이었다.
텅 빈 부엌을 보며 문득 '아, 오늘이 토요일이지.' 깨달았다. 매주 남편을 기다리는 내가 어째서 미리 장을 보지 않았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초조해졌고, 나는 서둘러 마트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콩나물 해장국 재료를 사 와 급히 음식을 준비했다.
요리가 막 끝나자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익숙한 그 짧은소리가 그날따라 불길한 예감을 데리고 왔다.
문을 열자, 남편 옆에 낯선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아이는 긴장한 듯 입술을 잘근 깨물고 있었다. 남편이 그런 아이의 등을 가볍게 밀며 말했다.
“인사해. 전에 말했던 그 애야.”
나는 얼어붙은 채 잠시 망설이다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
말끝을 흐리며 남편의 뒤로 숨었다. 아이의 작은 손이 남편의 큰 손을 꼭 붙잡았다. 나는 그 작고 통통한 손이 못 견디게 거슬렸다.
“병우야, 오늘부터 여기서 사는 거야.”
남편의 담담한 목소리는 내 귀를 타고 가슴 깊숙이 박혔다. 나는 질문하지 않았다. 질문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예상했던 날이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왔다.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대신 옅은 미소를 띠고 아이에게 시선을 맞췄다.
“멀리서 오느라 배고팠겠다. 아직 점심 안 먹었지?”
병우는 여전히 눈을 내리깐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두 사람을 부엌으로 안내했다. 아무 일 없는 듯 식사를 차리고, 아이를 위해 소시지볶음을 따로 만들었다. 어색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소시지볶음을 아이 앞에 두었다. 그런데 병우는 숟가락만 쥐고 밥그릇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혹시 싫어하는 반찬인가 싶어 속으로 걱정하던 차에, 남편이 병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히 말했다.
“마음껏 먹어도 돼.”
병우는 남편의 손길에 안심한 듯 그제야 젓가락으로 소시지를 집어 볼이 터지도록 넣었다. 양 볼이 부풀어 오른 아이의 모습은 어미 잃은 새끼 돼지 같았다.
“연우는?”
남편이 그제야 연우를 떠올린 듯 물었다.
“토요일이잖아. 책 사러 서점 갔어.”
“음.”
“전화할까?”
“놔둬. 어차피 곧 올 텐데.”
그때 문이 열렸다. 연우가 책 한 권을 손에 든 채 우리를 빤히 바라봤다. 광대까지 뻗은 흉터는 이상하게도 아들이 자랄수록 더 선명해졌다. 뛰어난 이목구비 속에 자리한 그것을 볼 때면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힌 곤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애써 밝게 말했다.
“연우야, 아빠 오셨어. 그리고…”
목소리가 중간에서 끊기듯 멈췄다.
“됐어요.”
연우는 더 듣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짧은 한 마디로 집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남편을 살폈다. 예상대로 남편의 얼굴엔 불쾌감이 가득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나려는데,
“… 무서워.”
병우가 작게 읊조린 말이 날카롭게 귀를 스쳤다. 못 들은 척하며 서둘러 아들의 방 앞으로 갔다. 방문 틈새로 보이는 아들의 뒷모습이 낯설고 차가웠다. 연우는 등 뒤로 나를 밀어내듯 조용히 문을 닫았다. 작고 낮은 소리가 내 가슴속에 깊은 균열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