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

2. 잠식- 형의 증언

by 카폐인


녹음파일_2023.05.01


[재생 중...]


음-. 뭐부터 말하면 좋을까요?

아, 네. 기분이요.


가끔씩 그런 기분 느껴본 적 있지 않나요? 누군가가 다른 사람 앞에선 늘 웃다가, 나랑만 눈이 마주치면 순식간에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버리는 거요. 동생이저를 볼 때 꼭 그랬어요. 그 눈빛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져요.


저도 알아요. 제가 살찌고 둔하고 공부도 못한다는 거. 그런데 동생은 달라요. 키 크지, 인물 좋지,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지. 굳이 설명해야 하나요? 걔랑 같이 서 있으면 저는 더 초라해졌어요. 정확히 말하면, 그냥 스스로가 너무 창피했어요.


중학교 입학식 날, 동생이 신신당부했어요. “학교에선 절대 아는 척하지 마.” 저는 알았다고 했죠. 근데 이게 웬걸, 우리가 같은 반이 돼 버린 거예요. 솔직히 저는 기뻤어요. 그래서였던 것 같아요. 쉬는 시간에 저도 모르게 연우를 향해 “연우야, 오늘 저녁 뭐 먹을 거야?” 하고 말을 걸어버렸으니까요.


그 순간 교실이 싸늘하게 조용해졌어요. 곧이어 터져 나온 웃음소리와 귓속을 후벼 파듯 들려오는 말들이 있었어요. '돼지', '찐따 새끼.'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 말들이 저를 겨냥한 거라는 걸 알 수 있었죠. 연우는 그런 저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차갑게 바라봤어요.


제가 행동이 좀 느려요. 떨어진 펜을 주울 때도, 선생님 질문에 답할 때도 시간이 조금 더 걸려요. 그때마다 뒤쪽 어디선가 “야, 딜레이 걸렸냐?”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어요.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꼈냐고요?


똑똑히 기억나요. 중학교 입학식 다음 날 점심시간이었어요. 종이 울리자마자 애들이 일제히 식당으로 뛰어나갔고, 저는 늦게 일어나서 부랴부랴 따라갔죠. 복도 끝에 연우가 친구들과 웃으며 걷는 게 보였어요. 저는 뒤처져서 겨우 줄 끝에 섰어요.


식판을 들고 자리를 찾으려는데, 앉을 곳이 없었어요. 친구들 사이로 끼어들려고 해도, 다들 서로 자리를 맡아둔 듯한 표정이었어요. 조심스럽게 “여기 자리 있어?”라고 물어도, 누구 하나 저를 쳐다보지 않았어요.


그때였어요. 연우랑 눈이 마주친 건.


하지만 걔는 곧바로 시선을 돌렸어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친구들과 떠들면서요. 마치 제가 거기 없는 사람인 것처럼요.


결국 저는 출구 옆, 음식물 쓰레기통 바로 앞에 앉았어요. 식판을 내려놓다가 손이 떨려 국을 쏟았어요. 새 교복엔 주황색 얼룩이 번졌죠. '빨리 먹고 나가야겠다'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어요.


엄마가 "우리 아들, 밥 먹는 모습이 참 복스럽기도 하지." 했던 말을 머릿속에서 계속 되뇌었어요. 식판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꾸역꾸역 밥을 먹었어요. 누군가 저를 보고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도, 들리지 않는 척했어요.


연우는 그날 단 한 번도 저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저 역시 연우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아는 척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느라 혼났죠. 그런데 방과 후에 담임선생님이 저희 관계에 대해 물었을 때, 연우가 절 챙겨줬어요. 그 순간만큼은 형제라는 사실이 새삼 기쁘게 느껴졌죠. 하지만 그 누구도 몰랐을 거예요. 걔가 집에서 어떤 식으로 저를 대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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