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잠식- 아들의 편지
어머니, 지난번에 보내주신 엽서 잘 받았어요.
엽서 뒤에 그려진 고요한 바다를 보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가족 여행이 떠오르더군요. 그때 그 바다도 이처럼 깊고 어두웠는데 말이죠.
어머니께서 카네이션에 대해 기억한다니 기뻤어요. 실은, 요새 워낙 잘 깜빡하시니까 그것도 기억 못 하면 어떡하지 걱정했거든요. 별거 아닌 열 살 때의 일이라도 알게 모르게 새겨진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어머니가 그날 일을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지금도 숨을 깊게 들이쉬면, 따사로운 햇살 아래 풍겼던 비릿한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열 살의 저는 겨우 완성한 종이 카네이션이 집에 오는 길에 부러지지 않을까 손으로 감싸며 조심히 왔었죠. 걸어서 십 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저는 이십 분이나 걸려 도착했죠. 저는 오래된 무덤 앞에서 멈췄어요. 네, 무덤.
저는 그 집을 그렇게 불렀어요.
좋게 부를 이유는 없었으니까요.
제가 그 무덤의 입구 앞에 다다랐을 때, 평소와 달리 그 안에선 큰 목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누가 들어도 어머니, 아버지 목소리였어요. 오죽하면 이웃집 노인 부부가 얼굴을 내밀어 봤겠습니까. 저는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현관문의 손잡이가 소리 나지 않게 천천히 열고, 두 분이 계신 곳까지 까치발을 들어 숨죽여 걸어갔어요. 조용히 걸음을 옮길수록 두 분의 높아지는 언성이 점점 더 또렷이 들렸죠.
“그래도 어버이날인데, 애 얼굴 한 번은 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흥분한 어머니의 물음에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더니, 비웃듯 말했어요.
“내 아들이 걔 하나뿐이던가?”
아버지가 되묻자, 어째서인지 어머니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어요. 단지, “여... 여보.”라며 뚝뚝 끊어지는 어머니의 목소리엔 떨림이 섞여 있었죠.
“내가 당신한테 받은 거라고는 멀쩡한 아들 하나 낳아준 거, 그거 하나뿐이야. 걔도 당신처럼 뜬구름만 잡다 끝난 배우 지망생으로 살게 하고 싶어?”
아무리 어린 저였어도, 두 분의 대화가 심상치 않다는 건 느낄 수 있었어요.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머니가 “닥쳐!”라며 소리를 질렀으니까요. 그리고 곧 아버지가 어머니를 향해 손을 올리는 걸 보았어요. 이에 겁을 먹은 저는 반사적으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죠.
그런데 순간 몸이 허공으로 던져졌어요. 짧은 비명과 함께, 저는 그대로 벽에 부딪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죠. 왜 내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두 손으로 버둥거리며 일어나려 했지만, 이마에서 번지는 욱신거림과 얼굴을 타고 흐르는 기분 나쁜 액체에 숨이 막혔어요.
그때의 감각이 가장 선명해요. 이후의 기억들은 마치 박살 난 유리 조각처럼 흩어져 있어요. 어머니가 다급하게 저를 안아 올렸고, 아버지는 그런 우리 둘을 향해 말없이 노려봤죠.
그다음 기억들은 더욱 흐릿해요.
아버지의 무심한 뒷모습, 낯선 목소리의 '다행히 실명은 아닙니다.'라는 말, 어둠 속 어딘가에서 들린 어머니의 쉰 목소리, 문 앞에서 떨어지는 무거운 한숨 소리까지요.
어버이날 이후,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두 번 얼굴을 비췄고 어머니의 얼굴은 빠르게 침몰해 갔죠.
하지만 저는 오히려 숨을 쉴 수 있었어요.
이유 모를 명치의 통증. 그게 사라졌으니까요.
그래도 다행이죠? 이젠 다 지난 일이지만, 그 기억들을 ‘추억’이란 단어로 포장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다는 게요.
아마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숨겨 놓았던 또 다른 아들과 함께 살게 된 덕분이겠죠.
처음 그 돼지를 봤을 때, 어머니도 바로 느끼셨겠죠. 제가 아버지의 유일한 정상적인 자식이라는 걸요. 학습 능력이 떨어져 한 살 어린 저와 같은 반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형 말이에요.
'멀쩡한 아들.‘
이건 오직 저만 가질 수 있는 단어라고 확신해요. 비록 얼굴 한쪽엔 지울 수 없는 흔적이 있다 해도 말이에요. 그러니 아버지가 첫아들을 오랫동안 외면한 것도 어쩌면 당연했던 거예요. 그놈은 그런 취급을 받아도 마땅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