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

1. 전조- 어머니의 침묵

by 카폐인


‘당신을 닮아서 좋군.’

그런 간지러운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던 아이의 아버지는 잠든 아이를 보며 자주 미소 지었다. 특히 두드러진 콧대와 긴 속눈썹이 제일 마음에 든다며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만지며 말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이렇게 만족해하니 나는 어떻겠는가. 세상 전부를 주어도 맞바꿀 수 없는 행복한 미래는 당연한 거였다. 영원한 약속이었다. 그랬는데-.

나의 보장된 행복은 아들의 손에 의해 무참히 깨져버렸다. 아니, 부서져버렸다. 이어 붙이지 못하도록 완전히 가루가 된 분홍빛 미래는 내 옆에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누워있다. 조용히 숨만 내뱉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언제 눈을 뜰까 하는 조바심은 버린 지 꽤 오래되었다. 지금은 그저 누구의 말도 오가지 않는 침묵 속에서 매일 무릎 꿇고 기도만 할 뿐이다.

제 남은 수명을 다 가져가도 좋으니

제발 이 사람을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제발.

아들의 아버지가 깨어나게 해 주세요.


그러나 내 기도에는 응답이 없었다.

대신,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다.

조금 해진 흰 봉투를 우편함에서 발견했을 때, 순간 나는 못 본 척했다. 그리고 곧바로 스스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가슴을 두드렸다.

외면하다니. 맹세컨대 나는 한 번도 아들을 외면한 적 없다. 주변 사람들이 ‘미친년.’, ‘자식을 어떻게 키웠길래.’ 따위의 험한 말을 내뱉으며 손가락질했을 때도 아들이 지내는 그곳이 매우 열악해 병에 걸리진 않을까, 같이 지내는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어쩌나 걱정할 뿐이었다. 주변의 시선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병실에 외롭게 누워있는 그이와 부모도 없이, 친구도 없이 낯선 곳에 혼자 지내게 된 아들이 너무 안쓰러워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혼자서 아들의 편지를 읽을 용기 따윈 더더욱 나지 않았다. 낡아 보이는 흰 봉투 속에 적혀있을 아들의 괴로움과 고독을 마주하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혼수상태에 빠진 그의 옆에 앉았다. 봉투를 열기 전에 보호자 의자에 허리를 쭉 펴고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도무지 펼칠 수 없어, 종이 가장자리를 몇 번이나 문질렀다. 마치 그 안에 폭탄이 든 것처럼 봉투를 뒤집었다가 다시 놓길 여러 번, 이내 결심을 굳혔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고요히 잠든 그의 얼굴을 보니 이상하게 용기가 났다. 내심 이 사람도 아들이 보낸 편지를 읽고 싶은 건 아닐까? 그래도 우리 아들이지 않은가. 당신이 그토록 말했던 ‘유일한 아들’이 보낸 마음을 ‘유일한 부모’인 우리가 알아줘야 하는 건 당연하다.

편지 속에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중간부터 내려올수록 카네이션에 대해 말할 때부터 내가 낳은 아들이라는 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안도했다. 혹시, 기억나세요? 정중히 묻는 태도에 그만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흐르는 눈꺼풀 사이로 쓰러진 열 살 아들이 보인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들의 고운 얼굴에 흉터 따윈 새겨지지 않게 하는 건데.

남편이 아이를 밀친 것은 그때 딱 한 번 뿐이었다.

나는 바로 아이를 안아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도 스스로 놀랐는지 제자리에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는 서럽게 우는 아들을 안아 차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심장이 떨어질 것 같았다. 멍하니 있던 남편은 내가 두 번 더 소릴 지른 후에야 차키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당장 내일 아역 오디션인데.’ 하필 이럴 때. 소중한 아이의 얼굴이 크게 망가졌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아이가 앞으로 꿈을 이루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상처는 아물게 되었지만 금이 간 듯 그어진 상처는 얼굴에 남겨졌다.

그날 이후 남편은 아들의 머리조차 쓰다듬어 주지 않았다. 물론 안아주지도 않았다. 그런 남편에게 죄책감 때문이냐고 물어도 보았지만 별다른 대답은 듣지 못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들이 우리 부부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것이.

처음엔 단순한 사춘기라 생각하고 넘겼는데, 날이 갈수록 식탁에도 함께 앉지 않는 아들을 보며 점점 가슴 한구석이 아려옴을 느꼈다.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이 감정은 아마 배신감이라고 말하면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혹은 “친구들이랑 어디로 놀러 갈 거니?”라고 최대한 다정히 물어도 어느덧 제 아버지 키를 넘은 아들은 무표정으로 입을 다물거나 겨우 “그냥요.” 와 같은 짧은 대답만 들려줄 뿐이었다. 그리곤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분명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족은 가끔 외식도 하고 타 지역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다. 누가 봐도 평범하게 단란한 가정. 설마, 나와 남편이 신혼 초에 자주 다퉜던 일 때문일까? 하지만 어떤 가정이든 저마다의 문제를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남들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을 뿐이었다. 큰 문제는 아니다.


아들이 이렇게 된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가만히 떠올려보니, 어버이날 남편이 실수로 아들을 다치게 한 뒤, 한동안 아이를 유난히 엄하게 다그쳤던 기억이 난다.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한 달 지났을 무렵이었다. 새벽 한 시가 되도록 들어오지 않는 아들에게 나는 부엌에서 전화도 받지 않는 아들에게 이미 수십 통의 문자를 넣고 있었다. 남편은 단단히 화난 상태였다. 거실 소파에 앉아 분에 찬 듯 씩씩대는 그에게

“근처 피시방에 있을지도 몰라, 요즘 새로 사귄 친구들이랑 자주 가는 것 같았거든.”라고 말하며 급히 외투를 입어 나가려 했다. 그런데 뒤에서 남편이 내 팔을 붙잡더니 “내가 찾아볼게.”라며 겉옷 하나 입지 않고 슬리퍼만 신고 나갔다.


삼십 분 정도 흘렀을까, 밖에서 자그마한 소란이 일었다. 나는 마당으로 나가보았다. 문 앞에서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아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싫어! 더러워, 만지지마요!”

“이게 버르장머리 없이.”

“싫다니까요. 이런 집엔 안 들어가!”

“안 되겠다. 너 오늘 나한테 맞을 줄 알아.”


이성을 잃은 남편의 얼굴을 그날 처음 보았다. 나는 문 앞에서 얼어붙은 채 두 사람이 서로 밀치고 잡아당기는 걸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내 심장은 점점 빨라졌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갑자기 “악!” 소리와 함께 아이의 허리가 숙여졌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급히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여보, 이것 좀 놓고 얘기해.”

“당신은 빠져.”


나는 아들의 뒷머리를 잡은 그의 손을 잡고 사정했다. 하지만 남편은 내 말이 귀에도 들리지 않는지 아이의 머리카락을 더 세게 쥐었다. 그럴수록 입술을 피나도록 깨물던 아이는, 남편의 손등에 손톱을 박았다. 순간 남편이 손을 놓았다. 자기 손등에 맺힌 핏자국을 보고 그는 눈이 튀어나올 듯한 표정으로 아들의 뺨을 내리쳤다. 아이는 순식간에 옆으로 넘어졌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아들의 얼굴에 또 생채기가 났을까 황급히 살펴보았다.


그때, 옆집에서 둔탁하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할머니가 얼굴을 내밀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나는 평소 잠귀가 어두운 분이란 걸 떠올리곤 서둘러 옆집으로 다가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애 아빠랑 애가 잠깐 다퉈서... 죄송해요, 시끄럽게 해서.”


할머니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닫았다. 뒤돌아보니, 이미 남편은 없었고 자리에서 일어난 아들이 손으로 옷을 털고 있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내가 아들을 어떻게 방으로 데려갔는지, 그날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도무지 선명하지 않다. 다만, 우리가 다음 날 아침 아무렇지 않은 듯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편지를 아무리 다시 읽어보아도, 작년에 아들이 벌인 짓이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가 주었던 사랑과 관심은 도대체 어디에서 잘못된 걸까? 아이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어쩌면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새겼던 걸까. 나는 도무지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가 두려웠다. 내가 놓친 게 더 있는 걸까?


그렇게 한동안 아들이 보낸 편지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푹 숙이다가, 한참을 그러다가 나는 그 종이를 조심스레 접어 다시 봉투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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