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

1. 전조-프롤로그/ 아들의 편지

by 카폐인

[기사] 고등학생,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친부 폭행


2022년 5월 8일 오후 6시경, 서울 OO구에 위치한 S가구 백화점 지하 2층 주차장에서 고등학생 A군(16)이 자신의 친부 B 씨(47)를 폭행해 체포됐다. 당시 B 씨는 20대 여성 C 씨와 함께 있었으며, A군은 두 사람과 심한 언쟁 끝에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을 지나던 시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A군을 특수폭행 혐의로 인근 경찰서로 이송했다. A군은 경찰 조사에서 “그냥 멈추게 하고 싶었다”라고 진술했다.


이번 사건은 특히 A군이 평소 모범생으로 알려졌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의 형은 “늘 성적이 상위권이었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동생이었다. 잘생긴 외모 때문에 인기도 많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재 B 씨는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C씨도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A군은 현재 소년보호 사건으로 분류되어 경찰 조사를 받고 있으며, A군의 모친은 언론에 “아이의 진심을 아무도 몰라준다”며 짧은 입장을 밝혔다.




아들의 편지


어머니,

그날 저는 아버지를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건 정말 우연이었어요. 하지만 바깥세상은 제 말을 믿어 주지 않네요. 저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낍니다. 더군다나 어머니가 세상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야 상황을 겪게 되어 너무나 괴로울 뿐입니다. 신문에서 저를 ‘천륜을 저버린 아들’, ‘가면을 쓴 괴물’이라 지칭한다 해도, 진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진실-.

그래요, 진실이란 언제나 참혹함을 동반하죠.

예를 들면, 아버지가 최근 몇 년간 일요일마다 사 왔던 꽃다발이 어머니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죄책감을 감추기 위해 사 왔다는 그런 것 말이죠. 그날도 그런 겁니다. 단지, 벗겨진 민낯을 마주하기엔 제가 아직 어린 게 문제였겠죠.


그러고 보니 제가 어머니께 편지를 쓰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요. 그나마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어릴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제가 아홉 살 때 말이에요. 학교에서 어버이날을 맞이해 카네이션과 함께 손 편지를 쓴 게 기억나요. 핑킹가위로 빨간 색종이를 잘라 꽃잎을 만들고 철사로 만든 줄기에 동그랗게 모은 꽃잎을 연결하고 또 초록 테이프로 철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감싸고요. 어머니와 달리 손재주가 없던 저는 최대한 ‘꽃으로 보이게끔’ 하는 데 온 신경을 기울였어요.


‘망가지지 마, 망가지지 마, 제발 망가지지 마.’


그때 제 머릿속엔 온통 꽃잎과 철사가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아침에 느꼈던 쌀쌀한 공기 때문이었겠죠. 집안 전체가 숨죽이는 것만 같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고드는 냉기 속에서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집을 나서는 뒷모습을 향해 ‘아버지, 잘 다녀오세요.’라며 허리를 숙였죠. 하지만 그런 저에게 아버지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저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에 속이 이상하게 울렁거렸죠. 아침으로 어머니가 해주신 계란말이가 뒤틀려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어요. 식은땀이 나고 속이 날뛰는 제 몸을 어찌할 줄 몰라 겁이 나서 그대로 안겼던 어머니의 품이 생각나요. 그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 어떤 추운 겨울이 와도 다 녹일 수 있는 건 오로지 어머니뿐이라고 말을 배우기 전부터 알았는걸요. 그러니 자유의 몸이 아닌 제가 유일하게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께 편지를 쓰는 게 아닐까요?


겨우 카네이션의 모양을 유지시키는 데 성공했을 때 잠시 기쁨을 느꼈죠. 그리고 곧 부모님께 편지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책상 밑으로 숨고 싶었죠. 저는 어머니께만 편지를 쓰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두 분에게 써야 한다는 빌어먹을 학교 행사 지침 때문에 저는 꾸역꾸역 아버지께 편지를 써야 했죠.


그나마 위안됐던 건, 편지가 작은 메모장이었다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귀여운 곰돌이의 얼굴이 모서리에 박힌 작은 그 메모장을 참 잘 골랐다 싶어요. 누가 더 나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봐 주는지 아주 어린 나이의 저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걸 읽든 말든 전 상관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제 편지를 읽어주면 그걸로도 충분히 기뻤을 테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의 즐거운 바람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혹시 기억나세요? 아버지 덕분에 찢긴 카네이션과 하얀 문신이 새겨진 일 말이에요. 마치 누군가 얇은 송곳으로 꾹꾹 눌러 선을 그은 것처럼, 이마 한가운데서 시작돼 왼쪽 광대뼈 아래까지 뻗은 흉터를 어머니는 내내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아까워, 아까워.’하며 한숨을 쉬셨죠. 하지만 괜찮아요. 작년까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해요. 덕분에 학교에서 생활했을 때보다 이곳 생활엔 꽤 도움을 받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미 제 일부가 되어서 익숙해요. 아주 가끔 한 번씩 거울을 볼 때면 그곳만 시간이 멈춘 듯하지만요.


이런, 쓰다 보니 벌써 칸이 모자라네요. 다음에는 보내주신 용돈으로 좀 더 긴 종이나 공책을 구매해 써서 보낼게요. 그럼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하나뿐인 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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