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1분이면 되잖아?

by 카폐인

지구상에 중력이 존재하는 한, 진상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것은 만유인력의 법칙만큼이나 강력한 '진상 보존의 법칙'이다. 내가 자리를 옮긴다고 그들이 사라질까? 천만에. 그저 다른 얼굴을 한 또 다른 '그분'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오전 8시 50분. 가게 오픈까지 딱 10분 남았다. 이 시간의 공기는 팽팽하다. 손님들에게는 그저 '불 꺼진 가게'일지 모르지만,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포스기를 켜고, 시재를 확인하고, 그라인더를 조절한다. 바깥에 무거운 배너를 내놓고, 테이블을 닦고, 물류 박스를 뜯어 제자리에 채워 넣는다. 이 모든 과정이 톱니바퀴처럼 딱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9시 정각, 손님에게 "어서 오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날은 그 팽팽한 공기를 찢고 전화벨이 울렸다.


"어, 저 지금 가고 있는데 아이스 바닐라 라떼 4잔만 미리 준비해 주세요."


가게가 아직 오픈 전인걸 알긴 하는 걸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너무나 당당했다. 자신이 10분 뒤 도착할 예정이니 미리 만들어 놓으라는 다분히 일방적인 남성의 말이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수화기너머의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오픈 시간이 9시라서요. 지금은 준비 중이라 주문을 받기 어렵습니다."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아니, 왜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요. 샷 하나 내리는 데 1분도 안 걸리잖아요. 4잔은 4분이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1잔에 1분, 4잔에 4분. 그의 머릿속에서 카페는 자판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버튼만 누르면 뚝딱 나오는 기계. 그 커피 한 잔을 위해 내가 머신을 세팅하고, 우유를 꺼내고, 컵을 준비하고, 또 다른 일 등등 '보이지 않는 노동'은 그의 계산식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나의 의사를 정중히 전했다.


"손님, 죄송합니다. 준비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시 한번 거절하자, 수화기 너머로 깊고 진한 한숨이 들려왔다.


"하아……"


그 한숨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소심한 일격을 가했다.


"하아."


커다란 한숨을 똑같이 들려주자, 수화기 너머로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곧 전화는 끊겼다.


그는 나와 내 노동을, 버튼만 누르면 움직이는 부품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매니저였기에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이지, 알바생이었다면 아마 사장님께 바로 전화부터 했을 거다.


어느 가게의 오픈 시간은 약속이다.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겠다는 약속. 그 10분의 준비 시간을 무시하는 건, 1잔에 1분이라는 단순한 산수로 퉁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건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가의 문제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