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은 지난 십여 년간의 카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제가 살아오며 수없이 마주쳤던 ‘누군가’를 상징합니다.
밤 8시. 도심의 소음이 잦아들 무렵,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C사장이 운영하는 다른 지점에서 근무 중인, 갓 스무 살의 알바생이었다. 그녀가 이 시간에 전화할 이유는 없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말 대신 숨이 먼저 들려왔다.
“저... 일찍 퇴근해도 될까요?”
“네? 무슨 일이에요?”
“술 취한 아저씨가 주문하고 나서도 계속 가게 앞을 서성거리고 안 가요...”
그녀가 일하는 카페는 시장 맞은편에 위치해 있었지만, 그 라인은 상가가 드물어 밤이 되면 유독 외딴섬처럼 보였다. 여름밤, 산책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지나가긴 했지만 어둠 속에 홀로 빛나는 카페는 길을 비추기보다 먼저 눈에 띄는 표식에 가까웠다. 건물 안쪽에 있다 해도, 젊은 여성이 혼자 밤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위협적이었다.
하필 그날, 나는 본점에서 근무 중이라 그곳으로 갈 수 없었다. 그녀를 최대한 안심시킨 뒤,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상황을 설명하고, 알바생이 너무 겁에 질려 있으니 30분만 일찍 마감하고 퇴근하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건넸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 귀를 의심케 했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약하니?"
수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 섞인 그 한마디가 들려왔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약하다’는 말이 지금 이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단어였던가.
위험 앞에서 느끼는 공포를 개인의 성격 문제로 치부해도 되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해프닝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적 드문 밤거리에서 홀로 취객의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이에게 그것은 실제 위협이다. 그 공포를 ‘나약함’이라는 잣대로 재단하는 태도는 과연 상사로서 타당한 판단일까. 어쩌면 그것은 가장 손쉬운 방식의 책임 회피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사장은 마지못해 조기 퇴근을 허락했다. 다행히 알바생에게 별다른 일은 없었고,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씁쓸한 뒷맛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책임감’이나 ‘강인함’이라는 말로 타인의 불안을 묵살한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어떤 서비스 정신도 한 개인의 안전보다 앞설 수는 없으니 말이다. “왜 그렇게 약하니?”라는 말 대신, “많이 놀랐지. 이제 괜찮아.”라는 말을 먼저 건넸어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기준에서 보자면 나는 ‘약한 직원’에 해당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손님들에게 무례한 직원이었다. 돌이켜보면 위험했던 순간들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휴일 없이 일에 치이며 살아가던사람이었고, 그 악에 받친 태도가 나를 지켜주는 것처럼 착각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