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은 지난 십여 년간의 카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제가 살아오며 수없이 마주쳤던 ‘누군가’를 상징합니다.
“요즘 그런 손님 많지 않아요?”
마감이 치킨을 뜯다 말고 말했다.
“어떤 손님이요?”
주말 직원이 맥주를 입에 가져가며 되물었다.
“속마음이랑 주문이랑 따로 노는 사람들이요. 오늘도 그랬어요. 손님이 ‘추우니까 따뜻한 아메리카노요’ 해서 따뜻하게 드렸거든요? 근데 아이스였대요.”
다들 “아 그거!” 하고 낮게 탄식했다.
나도 고개를 저었다.
이맘때가 되면 나타나는 계절성 증상.
말과 속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손님들.
본인이 잘못 주문해 놓고 당황해하거나 화를 내며 교체를 요청한다.
주문 모니터, 빌지 영수증, 그 자리에서 바로 직원이 다 확인해도 막을 수 없다.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매장 공기 사이에서 몸이 잠깐 흐물 해져 머리가 멈추는 걸지도 모른다며,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하지만 결국 잘못은 직원 몫이 된다. 조금 억울해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는 것만이 본인에게 도움 된다.
치킨을 씹던 마감이 켁켁 대다 맥주를 벌컥 마셨다. “크아-.” 시원하게 숨을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본인이 언제 그렇게 주문했냐면서 버럭 하더라고요. ‘죄송합니다’ 하고 다시 만들어드렸죠. 잘못 들은 제 탓이죠, 뭐.”
“진짜 어이없어….” 붉어진 볼로 마감이 덧붙이자, 옆 주말 직원이 등을 두드렸다.
“고생했어, 괜찮아. 괜찮아.”
B사장이 마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려던 찰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대화를 끊고 들어왔다.
“아 근데요, 그거. 저는 웬만하면 바로 알아요.”
시선이 자연스럽게 오픈에게 쏠렸다.
그녀는 단발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눈을 반짝였다.
“손님이 말은 따뜻하다고 해도, 표정 보면 아이스인지 뜨거운지 감 오잖아요? 아-. 이건 아이스다, 느낌 오죠.”
B 사장은 박수를 치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묶은 머리가 옆에 있던 주말의 얼굴을 간지렸다.
“역시 오픈이 센스가 있어. 일할 때 딱 티가 나.”
그 한마디가 오픈과 다른 알바생들 사이를 갈랐다. 이 몇 안 되는 알바생들 사이에서도 서열이 잡힌다. 누구는 편안해지고, 누구는 조심스러워지고, 누구는 입을 덜 연다.
나는 맥주잔 표면의 손가락 자국을 괜히 쓱 문질렀다. 입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손이 갈 데가 없어서.
대화는 다시 잡담으로 흘러갔다.
그때 오픈이 슬쩍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니는요? 요즘 좀 익숙해졌죠? 이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겠던데?”
‘익숙해졌죠’에서 느껴지는 묘한 톡 쏘는 질감.
가게가 지어질 때 같이 들어온 사람이 할 말 치고 참 너그럽다.
나는 양념만 묻은 빈 접시를 뒤적이며 짧게 대답했다.
“하다 보면 익숙해지죠.”
속에서 치킨무보다 더 시큼한 기분이 올라왔다.
이래서 회식은 피곤하다.
각자 맡은 시간 아니면 얼굴 볼 일도 없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없어도 될 감정들이 꼭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