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카오스 회식 (상)

by 카폐인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은 지난 십여 년간의 카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제가 살아오며 수없이 마주쳤던 ‘누군가’를 상징합니다.



얼마 전, ‘카오스 가드닝’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계획 없이 여러 씨앗을 한꺼번에 뿌리고, 결과는 자연에 맡기는 방식. 무질서 속에서 어쩌다 피어나는 조합이 의외로 아름답고, 처음 시작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뭐 그런 설명이 뒤따랐다. 우후죽순 자라난 정원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아, 이거 회식인데?


서로 취향도, 성격도 제각각인 직원 여섯 명이 (요일은 달라도) 한 공간에서 일한다. 마치 작은 정원에 박혀 있는, 서로 다른 종의 식물들처럼.


‘회식’이라는 단어는 그런 의미에서 참 절묘하다. 퇴근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하루였는데, 일터만 벗어나면 결이 완전히 달라진다. 술 한 잔, 두 잔 올라가면 본심이 살짝 비치고, 관계의 틈새도 은근히 드러난다. 어느 정도 친해졌다 싶으면 꼭 나타난다.


선을 넘는 사람들.

예쁜 장미가 되고 싶어 하지만 결국 주변을 긁어대는 잡초 같은 사람들.

우리 카페에서도 확실한 존재가 있었으니-.


B 사장과 오픈 직원.

둘은 환장의 짝꿍이었다.


대망의 첫 회식.

사장은 지인이 하는 가게에 우리를 데려갔다.

컴컴한 조명에 주황빛이 은은하게 깔린 자리. 치킨이 달짝지근한 냄새를 풍기며 접시에 올라오고, 맥주는 하얀 거품이 잔 위에 예쁘게 놓였다. 첫 회식이라 눈빛부터 다들 들떠 있었다.


입사 때부터 사장은 ‘가족‘ 같은 회사를 주문처럼 읊었다. 우리는 ‘가족’이니 서로 두루두루 친해야 한다고. 특정 직원과만 친한 티 내지 말라고, 보는 눈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그러면서도 사장은 슬쩍 내게 속삭였다.


미들아, 가게가 지어질 때부터 함께 한 직원이니까. 내가 너는 좀 특별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알지?

“미들아! 올해는 모솔 탈출해야지.”


일순간 공기가 멈췄다. 잔잔하던 테이블 위에 잔이 가볍게 ‘딸깍’ 부딪힌 소리만 들릴 정도로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누구도 선뜻 입을 떼지 않고 눈동자만 굴렸다. 뭐, 대충 이런 표정이었다.


네? 갑자기 여기서요? 아주 멍멍이 같은 말이네요?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게요. 흑흑.”


B 사장은 먹잇감을 놓쳤다는 듯 쯧, 소리를 내며 맥주로 입안을 적셨다. 반년 동안 일하며 사장의 성향을 파악한 나는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주변 직원들이 더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그건 사적인 질문이었고, 나는 이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알바생이었으니까. (그래봤자, 고만고만한 20대 언저리의 사람들)


어쨌든 ‘가족’이라는 말이 이렇게 무기처럼 쓰일 줄은 몰랐다. 근데 그때 갑자기 옆에 있던 오픈 직원이 내 팔뚝을 꽉 잡아 흔들었다.


“비혼 아니시잖아요? 결혼하실 거죠?”


왜 이렇게 힘이 세지? 술 때문인가?


나는 이미 “아직 생각 없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아예 들리지도 않은 듯 오픈은 내 팔을 여러 번 통통 쳤다. 우리 언제 이렇게 터치하는 사이였나요? 왜 이래요. 아파요.


나는 어색한 미소만 지으며 맥주를 한 모금 넘겼다.

오픈 직원은 기다렸다는 듯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고, 테이블의 공기는 그제야 조금씩 풀어졌다. 부담스러운 웃음과 가벼운 농담이 뒤섞이며, 분위기는 느슨한 재즈처럼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속에서 욱 하고 올라온다.

이래서 내가 당신들한테

사생활을 ‘오픈’ 안 하는 겁니다.

양념치킨을 씹어 넘기며 하고픈 말을 위장으로 내려보낸다.

사장과 오픈 직원의 찰떡궁합은 늘 이런 식이었다.


예를 들어,

“사장님, 저 어젯밤에 고구마 먹었어요.”

라고 내가 가볍게 말하면,

다음날 사장이 오픈 직원에게 말한다.

“오픈아, 미들이 어젯밤에 고구마를 먹었대. 그런데 안색이…”

그러면 오픈 직원이 덧붙인다.

“늦은 밤에 고구마요? 안색이 안 좋았다고요? 되게 퍽퍽했겠네요... 혹시 밤고구마?”

사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랬구나… 어쩐지, 어제 안색이 별로더라고~.”


그렇게 내 작은 행동은 둘의 과열된 해석에 버무려져, 나는 갑자기 ‘밤고구마를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연애 경험이 적다는 말이 어느새 모태솔로로 둔갑해 있던 것처럼. (정작 진짜 모솔인 직원은 그 순간 눈동자가 가장 크게 흔들렸다.)


그날 가장 잊히지 않는 건 사장의 표정이었다.

어딘가 사람을 내려다보며 짓는, 본인만 모르는 그 웃음. 애초에 과시하길 좋아하고, 남의 불행이나 약점을 슬쩍 엿보며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화살 끝이 어느 순간 나를 향해 곧장 겨눠질 줄은 몰랐다.


말없이 묵묵히 일한 게 죄라면 죄였을까.

도와달라, 너무 힘들다, 맡길 사람이 없다.

사장의 요청에 매번 응했던 것이 그에게는 ‘만만함’이라는 신호로 보였던 걸까.


나는 가정도 있고, 아이도 있고, 사업도 굴리는데… 너는?

B 사장은 그런 질문을 표정만으로 던지는 사람이었다. 숨기려는 기색도, 숨길 생각도 없었다.

그게 얼마나 미성숙한 태도인지, 정작 본인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오픈 직원도 별다르지 않았다.

뭐든 과장하고, 뭐든 한 번 더 비틀어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 사장과 둘이 붙는 순간, 아무 일도 사건이 되고, 아무 말도 소문이 되었다.

나는 그 둘의 조합이 얼마나 성가신지, 오픈 직원이 퇴사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