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은 지난 십여 년간의 카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제가 살아오며 수없이 마주쳤던 ‘누군가’를 상징합니다.
B사장의 카페는 날이 갈수록 손님이 늘었다.
알바생들도 하나둘 더 뽑히면서, 어느새 20대 알바들 사이에서 내가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설거지→틈틈이 시럽 및 베이스 제조→손님 응대 및홀 관리→ 틈틈이 지저분해진 기기 닦기→ 행주 세탁→ 냉난방 체크. 이 조그만 일들이 끝도 없이 몰려오다니. 점점 하나씩 놓치는 게 생겼다. 이 사소한 것들을 한 번 놓치기 시작하면 패턴이 된다. 그리고 그 몫은 고스란히 내 뒷타임인 ‘마감’으로 넘어간다.
‘왜 이것도 안 해놨냐’
이 텔레파시는 사실 그냥 날아오지 않는다.
대체로 말 한 번 직접 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슬그머니 눈치로 오간다. 그리고 시작은 으레 사장의 입을 통해 튀어나온다.
“시간 될 때 이것만이라도 꼭 해주면 좋을 것 같아.”
네, 그럼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 일이 좋았기에 그냥 받아들였다. 새로 들어온 알바생들과 북적북적하게 일하는 것도 좋았다. 한 달쯤 지나자 별다른 피드백도 없어지고, 이제 좀 괜찮은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냉장고 손잡이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 냉장고 손잡이 ‘안쪽’ 닦아 주세요.
글씨체를 보는 순간,
마감 알바생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순간 드는 생각은 이랬다.
이 바쁜 시간에 이걸 챙기라고?
기분이 상하면서도, 그 표정을 티 낼 수는 없었다.
나이가 있는 내가 반박하면, 어린 알바생 눈엔 금세 “예민한 선배”로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 대신, 조용히 쪽지에 적힌 일을 더 꼼꼼히 챙겼다.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쪽지는 하루 걸러 하나씩 붙었고, 단톡방에도 비슷한 내용이 슬쩍 올라오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해 B사장에게 상황을 말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똑같은 말뿐이었다.
“음… 서로 조금만 더 배려해 보자.”
부정적인 피드백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자 내 자존감은 바닥을 기었다.
내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었나.
이런 일조차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인가.
퇴사할까 말까를 고민하며 자괴감의 바닥을 긁고 있을 때, ‘첫 회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아주 얄미운 진실 하나가 드러났다.
오픈 알바생이 사장과 엄청나게 대화를 한다는 사실말이다. 그리고 대화에는 늘 내 이름이 끼어 있었다.
“마감분 이해는 하는데요.”
“미들분이 마감분의 이런 점을 좀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저도 그 마음 알아요. 아무래도 지적받으면...”
알고 보니 마감에게 불만이 있던 오픈이 사장 앞에서는 ‘내 마음을 대변한다’며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땐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가 마감에 쌓인 불만을 직접 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주로는 내가 불편해한다는 걸 명분 삼아 사장에게 의견을 전했다.
매우 아쉽게도, 20대의 나는 매우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사장이 “미들아, 너 말은 하지?”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사람 사이에 불편해도 굳이 말하지 않는 혹은 불만이 있어도 삼켜버리는 그런 타입이었다. 그런데 그 침묵이 결국, 내가 말하지 않은 ‘불편함’을 누군가가 대신 꾸며 전달하는 꼴을 만들었다. 그 사이 오해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마감 알바생은 대놓고 내게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였고 나도 그런 그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말이 없으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가 쌓이면 마음이 상하고, 마음이 상하면 결국 사람이 떠난다.
거창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하다.
대화가 필요하다.
카페에도, 집에도, 사람이 부딪히는 모든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