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은 지난 십여 년간의 카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제가 살아오며 수없이 마주쳤던 ‘누군가’를 상징합니다.
상대방에게 출근 1분 전이라도 미리 와주길 바라는 마음은, 정말 꼰대일까?
정시에 오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없다.
문제는 정시에 오는 사람이 ‘교대해야 하는 사람’ 일 때 생긴다.
소규모 업장은 최소 인원으로 돌아간다. 교대해야 앞사람이 퇴근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정시출근’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정시에 출근하는 사람치고 지각 한 번도 안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악의는 없다. 그냥 습관이다. 그게 내가 지난 십여 년 동안 직장에서 지켜본 가장 흔한 패턴이었다.
“아니, 하다 못해 삼 분 전에 와서 앞치마라도 매야지. 약속에 늦을 뻔했다니까. ”
내 고용주였던 B사장의 단골 푸념이었다. 문제의 알바생은 ‘정시에 오는 사람’이었고, 정시에 오면서도 늘 1~2분씩은 늦게 업무를 시작했다. B사장은 그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 알바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다. 겉으로 보면 ‘고작 1~2분 가지고 그러냐’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쪽 입장을 모두 겪어본 나로서는 사장의 불만이 어느 정도 이해됐다. 그 몇 분이 쌓이면 결국 그 사람은 ‘지각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찍 도착해 손해 보는 쪽을 택했다.
반대로, 기다려야 퇴근할 수 있는 쪽은 어떨까.
칼퇴는 거의 없다.
사장이 없는 날이면 그 가능성은 더 희박해진다.
B사장이 못 견디던 문제의 알바생이 나간 뒤, 내가 그 자리를 맡았다. 그렇게 생긴 마감 자리에 새로운 알바생이 들어왔는데, 그는 투잡러였다. ‘어쩔 수 없다’는 변명 아래 그의 출근 시간은 매번 달랐다. 오히려 너무 일찍 오거나 확실하게 늦을 때가 차라리 나았다.
문제는 그가 정시에 오는 날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번번이 버스를 놓쳤다. 차라리 오 분, 십 분 늦어주면 교대 시간이 명확했을 텐데, 정시는 늘 애매했다. 버스를 타려면 다음 배차까지 한참 기다려야 해서, 한여름엔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길을, 한겨울엔 얼어붙은 길목을 조심조심 걸어 집에 갔다. 그 시간을, 나는 거의 일 년 동안 반복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B사장이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교대자와 근무 시간을 10분 겹치게 하기.’
시급은 조금 아끼고(?), 칼퇴는 칼퇴대로 보장되는, 참으로 한국적인 절충안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참 웃기면서도 씁쓸한 해결책이다.
왜냐하면 불만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모양을 바꿔 다시 등장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