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사피의 커피

by 카폐인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은 지난 십여 년간의 카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제가 살아오며 수없이 마주쳤던 ‘누군가’를 상징합니다.


점심시간의 카페는 늘 그렇듯 신나는 음악과 사람들의 수다로 북적인다. 딸랑, 문이 열리고 화려한 스카프를 두른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익숙하게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십 분 정도 흘렀을까? 직원과 내가 정신없이 배달 주문을 쳐내고 있을 때였다. 샷을 내리는 나를 향해 스카프의 손님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여기, 종이컵 세 개만 줘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종이컵을 달라고? 혹시 일행이 더 온 건가 싶어 눈치를 살폈지만, 그녀는 혼자였다. 하필이면 그때 배달 기사님이 도착하고, 주문이 쉴 새 없이 들어왔다. 바쁜 와중에 직원에게 묻거나 실랑이를 할 여유 따윈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일반 종이컵 세 개를 챙겨 건넨 뒤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했다.

폭풍 같은 점심이 지나가고 문득 아까 그 손님이 떠올랐다. 나는 테이블을 치우는 척하며 그녀의 자리를 힐끔거렸다.

역시나.

언제부턴지 화려한 스카프의 손님은 한 명이 아니라네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비슷한 느낌의 스카프를 두른 그들을 보며 혹시 분신술을 쓴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마저 들었다. 그들은 뜨거운 아메리카노한 잔을 종이컵 네 개에 어찌나 정성스럽게 나눠 담아 마시던지. 셀프바에 비치된 물병이 반 이상 비어있는 걸 보니, 그들이 한 시간 넘게 수다를 떨면서도 커피가 줄지 않았던 비결을 알 것 같았다.


그때,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가 머그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여기, 뜨거운 물 좀 더 줘요.”

당당했다. 마치 식당에서 밥을 먹다 반찬 리필을 요구하듯 자연스러웠다. 저 뻔뻔한 요구를 받아줘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새로운 손님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 여섯 명 앉을자리 있나요?”

하필 유일한 단체석을 스카프 부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들어온 손님은 안쪽을 슬쩍 훑어보더니 “자리가 없나 봐.”라며 일행을 이끌고 나가버렸다.


아차 싶었다. 눈앞에서 놓친 매출보다, 이 상황을 방치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나는 뜨거운 물을 재촉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손님, 매장 이용 시엔 1인 1 음료 주문 부탁드립니다.”

내 말에도 그녀의 안색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합세한 일행들이 거들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가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불러서 그래.”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자리를 더 견고히 지켰다. 물론, 추가 주문은 없었다. 그들은 커피가 희멀건한 보리차 색이 될 때까지 뜨거운 물을 리필하며 2시간을 꽉 채우고 나서야 일어났다.

그날 이후, 나는 결단을 내렸다.

포스기 옆에 **<1인 1 음료 필수>**라는 안내문을 붙이기로 한 것이다. 그 안내문은 일부 ‘알뜰한’ 손님들이 우리 가게에 남기고 간, 상처뿐인 훈장이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