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은 지난 십여 년간의 카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제가 살아오며 수없이 마주쳤던 ‘누군가’를 상징합니다.
여름은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잔혹한 계절이다. 쏟아지는 주문, 산처럼 쌓이는 플라스틱 컵, 불쾌지수 높은 손님들의 컴플레인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여름이면 기승을 부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그들’이 출몰하기 때문이다.
유난히 찌는 듯한 날이었다. 매장 앞에 검은 차 한 대가 서더니 젊은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우리 브랜드 로고가 박힌 큰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이 날씨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커피라니, 이열치열 대단하다 싶었다.
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며 들고 있던 컵을 쑥 내밀었다.
“이거 좀 버려주세요.”
보통은 반납대에 두거나 쓰레기통에 직접 버리는데, 굳이 카운터까지 와서 건네는 그 수고로움(?)을 무시할 수 없어 컵을 받아 들었다.
어?
순간 손목이 묵직했다. 남은 음료치고는 꽤 무거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는 의아했지만 바쁜 주문 탓에 컵을 싱크대 구석에 밀어 두고 남자가 주문한 커피를 재빨리 만들어 건넸다.
남자 손님이 떠나고도 한참 뒤에야 설거지를 할 틈이 생겼다. 직원이 바를 정리하는 동안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싱크대 구석에 얌전히 놓인 문제의 종이컵을 집어 들었다. 별생각 없이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배수구에 확 쏟아부은 순간이었다.
매캐하고 역한 냄새가 콧속을 훅 찔러 들어왔다.
순식간에 후각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점장님, 이게 무슨 냄새예요?”
포스기 쪽에 있던 직원에게까지 냄새가 번진 모양이었다. 직원은 코를 막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다가왔다. 속이 울렁거렸다.
갈색 커피 물 위로 둥둥 떠다니는 노르스름하고 허연 건더기들. 그것은 커피 찌꺼기가 아니었다. 물에 퉁퉁 불어 터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된 담배꽁초들이었다. 하나도 아니고 수십 개가 커피 찌꺼기와 뒤엉켜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흡연은 개인의 자유라 치자. 하지만 재떨이 대용으로 쓴 쓰레기를 가득 담아 건네는 심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버려주세요’라는 말은 컵을 버려달라는 뜻이었을까, 양심을 버려달라는 뜻이었을까.
그에게 그 컵은 그저 다 쓴 재떨이 었겠지만, 그것을 받아 든 나는 순간 인간 쓰레기통이 된 기분이었다. 매장용 머그잔들에 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싱크대에 깊게 배인 담배 쩐내는 주방세제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락스를 풀어 박박 문지르며 닦이지 않는 찝찝함을 씻어 내려 애써야 했고, 그날 쓴 고무장갑은 버렸다.
제발, 당신의 매너까지 그 꽁초와 함께 남에게 떠넘기지는 말자.